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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무릎을 곧추세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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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자 수필가

충청일보

[한옥자 수필가]최근에 듣고 보았던 말과 행동 중에 몹시 역겨웠던 두 가지가 있다. 지방 선거 후, 민심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다는 낙선자의 말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쓴 현수막 아래서 퍼포먼스를 벌인 사람들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 국민을 우습게 알았고 지금도 우습게 안다는 말로 들려 상당히 기분 나쁘고 화가 치밀었다.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조시대에도 왕은 민심을 천심이라고 여기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렸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기에 민심이 무섭다는 말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하는가.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를 청하는 데는 단서가 붙는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조건과 만약 그랬다면 용서를 구할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네들은 무릎 꿇음을 바르지 사용하지 않았고 이제는 잘못했다는 말의 사용 유효기간은 지났다.

자존심은 어디에다 던지셨는가. 목적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상관치 않고 구질구질하겠다는 건가. 고무신, 막걸리로 대변되던 우리나라의 선거문화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여겼던가. 철면피도 그 정도면 최상급이고 자존감이 없어도 한참 없다.

풀밭에 낮게 핀 들꽃을 제대로 보려면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몸을 낮추어야 한다. 어린아이와 진심으로 눈높이를 맞출 때도 그렇고 휠체어를 탄 사람과 소통할 때도 몸을 낮추어야 한다. 기도할 때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때도 무릎을 꿇는데 이런 자세는 진심을 가진 사람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무릎은 그럴 때 꿇어야 하는 거다.

지방 선거가 끝난 3일 후, 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보도기사를 냈다. '113명 중의 국회의원 중에 50여 명이 무릎을 꿇거나 도중에 퇴장했는데 대부분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라고. 이 기사를 보고 진정성을 느낀 국민이 있을까. 전체 인원 대비 반수 이하의 참석이다. 도중에 어물쩍 사라진 사람도 있었단다. 이것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데 그들만 모르는가 보다. 두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하늘을 향해 '하늘아 나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외치면 하늘은 눈 가린 이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아주 잘 보여'라고. 그 이후, 역시나 자중지란과 분탕질이 날로 거세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늪으로 빠지고 있는데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살아보겠단다. 현수막을 걸어 놓고 넙죽 무릎을 꿇을 때 알아봤다. 한두 번 속았어야 말이지. 그대들은 무릎을 꿇는 자격조차 잃었노라.

말에 의해 속을 만큼 속았다. 혹시나, 행여나 하다가 역시나, 하면서 국민은 깨어났다. 제발 용서도 구하지도 말고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 홀 바닥도 더럽히지 말길. 무릎을 곧추세우고 발 돋음을 하여 세상이, 창공이 당신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며 과감하게 금배지를 던져 버리길. 국민이 던지는 투표의 매를 맞고 내려오기보다 내 발로 도망치는 것이 훨씬 모양새 나는 일은 아닐까.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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