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한국인들은 전쟁 통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6ㆍ25 美 참전용사가 기록한 '1952년 서울'

“한국인들은 전쟁 통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이들ㆍ문화재 등 찍은 사진 300여장 본보에 보내

어떻게든 수업에 보내려는 부모들 열성이 인상적

어린 선생님에게도 깍듯… ‘한국 미래 밝다’ 예감

남북 정상회담 감회 커… 한반도 평화 깃들길
한국일보

마빈 프리드먼(Marvin Friedman)은 6ㆍ25전쟁 당시 유엔군 교육자문관(Education Advisor)으로 활동하며 보육원 설립 등 교육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프리드먼씨가 기록한 아이들. 미군 트럭 사이에 서 수줍게 웃는 소녀와 꽃다발을 파는 소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한복을 입고 짐을 머리에 인 소녀와 군모를 쓰고 곡괭이를 든 소년의 모습이 제법 어른스러워보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카메라 앞에 선 소녀의 수줍은 미소가 석양빛을 받아 빛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ㆍ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서울 일대를 담은 컬러 사진 수백 장이 새로 세상에 나왔다. 포화에 무너진 아비규환의 현장이지만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만큼은 살아있다. 빨래하고, 나무 지게 지고, 널뛰기하고, 노래하고 삶은 그렇게 계속됐다. 당시 문화재를 만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한국일보는 최근 미국 뉴욕 맨하튼에 사는 마빈 프리드먼(90)씨로부터 흑백 필름사진 111장과 컬러 슬라이드 필름 210장을 받았다. 프리드먼씨가 1952년 3월부터 11개월간 유엔군 교육자문관(Education Advisor)으로 서울에 근무하면서 찍은 기록들은 서랍 속에 묻혀 있다가 두 세 사람 손을 거쳐 한국에 닿았다. 그는 지인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보는 감회가 남달라 죽기 전에 공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사진 분석을 의뢰한 결과, 전쟁 당시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전시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6ㆍ25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아 300여장 중 일부를 공개한다. 그의 사진 소재는 크게 문화재와 아이들로 나눌 수 있다.

미술을 전공한 프리드먼씨에게 산령각과 열녀문, 한옥 단청 등 한국 고유의 문화재들은 독특한 미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성균관 명륜당,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광릉 등 우리에게 친숙한 문화유적의 전쟁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사료 가치가 높다는 게 군사편찬연구소 설명이다.
한국일보

마빈 프리드먼(90)씨와 그가 보내온 6ㆍ25전쟁 당시 촬영한 필름 및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의 ‘광릉’과 주변의 울창한 ‘광릉숲’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미술을 전공한 프리드먼씨는 서울 근교의 사찰과 능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명륜당(왼쪽)과 단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육자문관인 그의 임무와 관련이 있다. 당시 미군은 전투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도시 재건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는데, 프리드먼씨는 보육원ㆍ유치원 설립에 참여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 모습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카메라를 향해 웃는 사진 속 아이들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프리드먼씨는 “23세의 어린 청년을 선생님으로 존중해 주고, 열심으로 아이를 가르치려는 한국 부모의 모습을 보며 당시에도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징병으로 인해 젊은 남성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생활을 꾸려 나가던 한국 여성의 강인함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프리드먼씨는 휴전이 되던 해인 1953년 초 귀국 후 뉴욕에서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광고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본인 이름을 딴 프로덕션을 설립한 뒤 1993년 은퇴했다. 그는 사진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애정의 메시지도 전했다.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 성장한 한국을 볼 때마다 저 역시도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겨납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한국에 무궁한 평화가 깃들기를 멀리 뉴욕에서도 기원하겠습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자문=김경록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도움=황소연
한국일보

미군 부대 내의 여가시간. 미군들이 권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탱크의 포신 등 무기를 점검하는 미군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명절을 맞아 한복차림으로 널뛰기를 하는 여성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프리드먼씨가 촬영한 사진에서 한국인들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서울 시내 시장 풍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정릉천에 모여 있는 아이들 뒤편으로 고려대학교 건물이 살짝 보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카메라를 든 미군을 향해 경례를 하는 아이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