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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구글 자율주행차 1126만㎞ 달렸는데, 한국은 고작 2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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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캠퍼스에서 그랜저 자율주행차를 타고 강변북로로 향했다. 한양대 '에이스랩'이 만든 자율주행차는 천장과 차량 앞뒤에 달린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물체 인식센서) 등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파악한 뒤 핸들을 자동으로 움직여가며 시속 80㎞의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옆 차선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트럭이 끼어들자 속도를 줄이는 대신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트럭이 지나간 뒤 다시 출발하는 데도 3∼4초가 걸렸다.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현재 한국에는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차가 46대 있다. 정부가 자율주행차 운행 허가를 내준 2016년 2월부터 지금까지 이 차량들의 누적 주행 거리는 20만㎞ 정도이다. 반면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126만㎞를 달렸다. 자율주행차는 주행을 더 많이 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쌓고, 이를 토대로 기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자율주행차는 시작이 늦은 데다 제대로 된 육성책도 없다"면서 "앞선 기술을 가진 미국과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에 밀려 한국 자동차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설 자리 잃은 한국

구글은 올해 말부터 크라이슬러와 함께 자율주행차 6만2000대를 생산해 미국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 애플은 폴크스바겐과 손잡고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일대에서 자율주행 셔틀을 운행하기로 했다. 중국 인터넷 업체 바이두와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중국, 싱가포르에서 자율주행차를 시험 운행하고 있다. 이들은 2~3년 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와 운수 산업이 재편될 것으로 보고 선점 경쟁에 나선 것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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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는 승용차와 택시 위주인 자동차 산업을 차량 공유 중심으로 바꿔놓을 전망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미국 우버, 동남아 그랩 등 전 세계 차량공유 업체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도 자율주행차 시장을 노린 포석이다. 독일 BMW, 미국 GM·포드, 일본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도 자율주행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은 현대자동차와 네이버 등 일부 인터넷 기업이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는 한국의 자율주행차 수준을 미국·일본·독일 등 경쟁국에 한참 뒤진 세계 10위권으로 평가했다.

자율주행차의 두뇌인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도 미래를 선점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격전장이다. 현재 자율주행차용 AI 반도체에서 가장 앞선 곳은 미국 엔비디아다.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셋 '드라이브PX'는 초당 5만5000장의 이미지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이미 자동차와 IT 기업 370여 곳이 드라이브PX를 쓰고 있다. 핵심 부품 시장을 엔비디아가 장악했다는 것이다.

◇두뇌인 AI 반도체는 시작도 못 해

IT 업계에서는 AI 반도체가 앞으로 스마트폰, 냉장고, TV 등 모든 기기에 탑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AI 반도체는 모든 기기를 지금보다 훨씬 똑똑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며 "AI 반도체 시장은 당장 3년 후면 300억달러(약 32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한국이 앞서 있는 전자 제품과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AI 반도체 상용화를 계기로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23년 만에 삼성전자에 반도체 1위 자리를 내준 인텔은 AI 반도체 '로이히'를 개발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알리바바 등 중국 대표 IT기업들도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강인 한국은 AI 반도체에서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의 AI 반도체 기술력은 미국·중국에 비해 1~2년가량 뒤처져 있다"면서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반도체 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순차적으로 계산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달리 인간의 두뇌처럼 이미지·음성 인식, 대용량 데이터 분석 같은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칩셋. 자율주행차·드론·AI 전자제품 등의 두뇌 역할을 한다.

박건형 기자(defying@chosun.com);박순찬 기자;강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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