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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자의 반 타의 반” “우리가 핫바지유?” “정치는 虛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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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1926~2018]촌철살인 JP의 말말말

동아일보

‘서울의 봄’ 인촌기념관의 3金 1980년 2월 ‘서울의 봄’을 맞아 일민 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회장의 초청으로 서울 종로구 계동 인촌기념관에 모여 건배를 하고 있는 ‘3김’. 왼쪽부터 YS, DJ, 그리고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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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40년 넘는 정치 인생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을 유독 많이 남겼다. 평소 쌓은 문학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각박한 정치 현실을 누그러뜨렸고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현실 정치의 정곡을 찔렀다.

○ “춘래불사춘” 좌절된 민주화 예고

동아일보

3당 합당 1990년 2월 9일 고 김영산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서울 강남구 한국종합무역전시장에서 열린 3당 합당 축하연에서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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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나의 희망 반, 외부의 권유 반으로 떠나게 되는 것이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을 둘러싸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고 내분이 끊이지 않자 JP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공항에서 외유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고 동아일보가 이 말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보도하면서 JP의 대표 어록이 됐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1961년부터 진행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때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대일 청구권 협상을 했다. JP는 당시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1980년 2월 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회장이 주최한 인촌 김성수 선생 추도 행사에 참석한 JP는 기자들에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이라는 말을 아십니까”라고 말했다. “봄이 우리에게 왔다”는 취지로 먼저 얘기한 김영삼(YS) 김대중(DJ) 당시 야당 지도자에게 ‘대권이 눈앞에 왔다는 것은 허튼소리’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신군부의 쿠데타로 민주화의 좌절을 예언한 말처럼 돼 버렸다.

○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며 2인자론 강조
동아일보

자민련 창당 1995년 3월 30일 자민련 창당대회에서 총재로 선출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당기를 흔들며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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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는 2인자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를 표현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2인자의 처신을 강조하며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승부를 벼르면서 신년 휘호로 ‘줄탁동기((초+ㅐ,줄)啄同機·병아리가 알을 깨려면 어미 닭도 때를 맞춰 껍데기를 깨줘야 한다)’라고 썼다. 대선에 직접 출마하기보다 DJP 연합으로 헌정 사상 첫 평화적 정권 교체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JP는 처사촌 동생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끝내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JP는 박 전 대통령 대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2012년 박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 전에는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최순실 사태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의 퇴진 압박이 거센 2016년 11월 JP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그 고집을 꺾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 “핫바지”로 지역감정 자극…“정치는 허업”으로 마무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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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충청도민)가 핫바지유?”

충청 맹주로 JP는 1995년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자민련 전당대회장에서 이 말로 충청 민심을 자극했다. 김윤환 당시 정무장관이 “충청당이 생기면 보수적 정서로 볼 때 TK(대구경북)와도 통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TK가 핫바지냐”라며 받아넘긴 것을 교묘하게 활용해 지역감정을 자극한 것.

JP는 2000년 4·13총선에서 패한 뒤 민주당 이인제 의원으로부터 “지는 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자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 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2004년 JP는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는 말을 남기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뒤인 2011년 그는 자택을 찾아온 정치인에게 “정치는 허업(虛業)이다”라고 했다. 2015년 부인인 고 박영옥 여사의 장례식장에서는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그러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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