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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삐풀린 전세대출…반년새 8조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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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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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매매 시장을 틀어쥐는 부동산 규제에 대한 풍선효과로 국내 5대 은행 전세자금대출이 지난달 역대 최대인 54조원에 육박했다. 올해 들어 8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확 줄어든 데다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이 전셋집을 재계약하거나 매매에서 전세로 마음을 바꾸고 전세대출에 몰린 결과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53조6888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3401억원 늘어 월말 기준 역대 최고 금액을 기록했다. 올 들어 늘어난 5대 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7조9968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잔액 증가분은 8조1768억원이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에는 전세대출이 포함된다. 올해 증가한 주택담보대출 잔액의 98%가 전세대출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은행별로 뜯어 보면 전세대출이 주택담보대출 상승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5대 은행 가운데 대출 규모가 제일 큰 신한은행은 5월 한 달간 전세대출이 1883억원 늘어난 반면 이를 포함한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00억원 뛰는 데 그쳤다. 대출 잔액은 대출을 갚은 사람이 많으면 줄고, 새로 이뤄진 대출이 많으면 늘어난다.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은 신규 대출이 감소하고 상환만 주로 일어난 반면 전세대출은 신규 수요가 많이 몰린 결과다.

올해 1월 '100% 비대면 대출'을 무기로 내세우며 전세대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카카오뱅크의 '전월세보증금대출' 약정액도 지난 20일 기준 3300억원을 돌파했다. 이 은행 내부 목표치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지난 4월 대상 주택을 다가구·단독주택으로 확대하자 유입 고객이 확 늘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전세대출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우선 주택 관련 대출에 붙는 각종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꼽힌다. 전세자금대출 한도액 비율은 지역에 상관없이 임대보증금의 80%(통상 최대 2억2200만원)로 현재 서울지역 주택을 구입할 때 적용받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인 40%의 두 배다. 다른 대출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다 따져 신규 대출 한도를 정하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도 유독 전세대출은 이자만 반영해 따진다. 실수요 서민층이 많이 찾는 만큼 금융당국에서도 전세대출에 한해 예외를 둔 것이다.

너무 많이 오른 집값 탓에 주택매매가 위축된 것도 매매 대신 전세대출 수요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6만7789건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20.3% 줄었다. 부동산 규제 직격탄을 맞은 강남은 5414건으로 같은 기간 무려 43.4%나 폭락했다. 국토연구원이 조사한 지난달 전국 주택매매 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09.1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 지수가 115 이상이면 주택가격 상승 또는 거래가 늘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95~115 미만은 보합 국면으로 분류된다.

은행 입장에서 전세대출은 다른 대출보다 리스크가 작다. 사실상 떼일 우려가 없는 우량 대출인 만큼 은행들로서도 전세대출 유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대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해도 전세가격이 폭락하면 대출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한국은행은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보증금 대비 전세자금대출 비율이 높은 차주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집주인이 대부분인데, 그사이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갚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금융기관은 차주에 대한 여신심사 관리를, 보증기관은 보증 대상·한도·비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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