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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공사 수주전' 닮아가는 재건축 설계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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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단지 1년에 1~2곳 그쳤지만

6월까지 잠실진주 등 벌써 3곳

심사과정서 시행자 주관 개입

조합-업체 금품 오갈 가능성 커

"비리 온상으로 변질될 우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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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는 서울 강남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현상설계공모에 나서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설계안만을 평가해 업체를 선정하는 현상설계공모가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받아온 정비사업 시공사 수주전의 판박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재건축사업 시행자(조합,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고 이에 따라 조합은 물론 조합원과 설계업체 사이에 금품이 오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조합 설립 후 진행되는 정비사업 시공사 수주전의 경우 해당 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투표로 시공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표를 얻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는 등의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가락동 가락삼환아파트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지난 20일 현상설계공모를 공고했다. 지난 1984년 12층 648가구 규모로 준공된 가락삼환아파트는 재건축사업을 통해 최고 35층 1,082가구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이번 현상설계공모의 예정 설계금액은 24억원이며 오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응모 신청을 접수한 다음 18일 응모 작품을 접수한다.

그동안 강남 재건축 아파트 중에서 현상설계공모를 실시한 곳은 2016년(공고 시점 기준) 대치 은마, 2017년 잠실우성 1~3차, 잠실주공5단지로 1년에 1~2곳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서는 현재까지 현상설계공모 공고를 낸 곳이 잠실진주(5월), 가락삼익맨숀(6월)에 이어 가락삼환까지 3곳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공공지원 설계자 선정 기준에 따르면 정비사업을 진행중인 사업주체는 경쟁입찰과 현상설계공모 두 가지 방식으로 설계안을 선정할 수 있다. 경쟁입찰도 사업 시행자가 선호하는 업체를 선정할 가능성은 있지만 평가 항목, 배점 등이 있어 그나마 투명한 절차를 밟게 된다.

반면 현상설계공모는 설계비용이 수십억원대로 큰 데다 심사위원들의 설계안 평가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설계업체가 조합이나 심사위원에게 금전적 혜택 등의 이권을 제공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상설계공모에서 사업 시행자가 정하는 예정 설계금액은 국토교통부에서 정한 기준을 참고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범위는 정해져 있지 않다.

설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상설계공모에서 7~9명으로 구성하게 돼 있는 심사위원 중 1명은 조합 등 사업 시행자가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행자 측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심사위원회가 선정하는 우수작 2개 중 1개는 해당 단지 주민들이 선호하는 설계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종 당선작은 조합 또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총회에서 정하게 돼 있다. 조합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강남 지역의 한 아파트 재건축조합장은 “사업 시행자가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이는 만큼 반대급부를 원할 소지가 크고 결국 특정 설계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실시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조합원 다수가 선호하는 설계안이 채택되도록 공모 과정의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남재건축 단지의 한 주민은 “시공사는 물론이고 설계업체도 주민들의 바람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조합이 선정 절차를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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