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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해금된 사우디 여성운전…자유 향한 '드라이브'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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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령에 버금가는 대변혁" 평가속 "인권탄압 희석하려는 눈가림용"

연합뉴스

24일 새벽 운전하는 사우디 여성[AFP=연합뉴스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마침내 여성이 운전할 수 있게 됐다.

24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여성의 운전이 해금되자 수도 리야드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도로는 여성이 벌인 축제의 장이 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경찰은 운전하는 여성에게 꽃을 선물하는가 하면 차에 풍선을 달고 경적을 울리며 새롭게 도래한 자유를 누리는 여성 운전자로 도로가 들썩거렸다.

정부가 통제하는 사우디 현지 언론들은 이날을 사우디 여성의 권한을 크게 높인 '역사적인 날',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하고,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한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칭송했다.

이로써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여성운전을 금지했던 곳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여성운전 허용은 대단한 개혁 조치가 아니라 당연한 일을 뒤늦게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수준이다.

사우디와 함께 종교적으로 경직된 나라로 꼽히는 이란도 여성이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사우디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여성운전을 허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종교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고 사우디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사우디 국영 아랍뉴스는 24일 칼럼에서 "여성 운전허용은 단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걷어낸 것에 그치지 않고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령처럼 2018년 6월24일은 사우디 역사에 그렇게 대변혁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 중심에는 1년 전 왕세자에 오른 33세의 젊은 실세 왕자가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부친 살만 국왕의 절대 신임하에 '비전 2030'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은 '은둔의 오일 왕국'이라는 근대적인 이미지를 타파하고 온건한 이슬람국가로 개혁한다는 미래 청사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종교·관습적으로 금기시했던 여성의 사회·교육·경제 활동 참여, 대중문화 개방, 기득권의 부패 사정 수사 등이 휘몰아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여성운전 허용이 단순히 도로교통법의 개정이 아니라 더 크고 과감한 사우디의 개혁을 예고하는 조그만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SPA통신]



여성운전 해금이 분명히 긍정적인 방향이지만, 사우디의 이면에 여전히 짙게 드리운 그림자와 과오를 포장하는 '보여주기식 깜짝쇼'라는 비판도 공존한다.

여성 인권을 제약하는 핵심적 관습인 '남성 보호자(마흐람) 제도'(주요한 법적 행위에 보호자 자격의 남성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 제도)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또 정권을 비판하는 시민 활동가를 여전히 억압한다는 점도 이런 비판의 논거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사우디 정보당국은 사우디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14명을 외부 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보를 해쳤다는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그간 여성운전 허용, 마흐람 제도 철폐 등을 강하게 주장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국제 앰네스티, 유럽 의회 등은 이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사우디 정부가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고 여성운전 허용을 눈가람용 선전 도구로 이용한다고 의심한다.

여성운전 허용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에 단행된 인권 운동가 체포는 '통제할 수 있는 자유'만 허락하겠다는 사우디 당국의 변함없는 경직성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사우디가 3년 3개월째 개입하는 예멘 내전이 최악의 인도적 비극으로 치닫는 데 대한 사우디의 책임론이 높아지는 외부 비판을 분산해야 하는 필요성도 이런 개혁 조치의 배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 운전, 대중문화 개방 등의 조치가 1980년대 한국 군부정권의 '3S 정책'처럼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유화책 정도로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다.

저유가가 4년째 접어들면서 사우디 정부는 긴축재정 정책을 시행해 연료 보조금을 깎는 등 공공 지출을 대폭 줄였다.

아울러 35세 이하 젊은 층이 과반인 인구 구성상 이들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게 왕권의 안정에도 도움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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