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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수돗물 불안해 못 마신다" 생수 사재기 나선 대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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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2일 오후 대구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생수를 구매하고 있다. 대구 수돗물에 최근 환경부가 수돗물 수질감시 항목으로 새로 지정한 과불화화합물이 다량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생수 판매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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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서구 송현동에 사는 주부 최모(62)씨는 지난 주말 2L짜리 생수 30여병을 구매해 집에 쌓아뒀다. 여기에 24일 오전 인터넷으로 생수 20여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는 "대구 수돗물에 발암 물질이 섞여 있다고 해서 생수 사재기를 하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생수만 마실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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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대구시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손님이 카트에 생수를 가득 실어 놓은 모습.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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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민들이 주말 내내 '수돗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2일 수돗물을 취수하는 낙동강 수계에서 유해물질인 과불화화합물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다. 대구시가 급히 "지금은 수돗물이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찝찝하고, 못 믿겠다"며 수돗물 마시기를 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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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대구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손님들이 생수를 카트에 싣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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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영(30·대구시 수성구)씨는 24일 "지금은 안전하다고, 유해물질 검출 수치가 권고치 이하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돗물 마시기가 불안하다"며 "대구 식수원을 시에서 제대로 관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기백(32·대구시 북구)씨는 "지금은 마셔도 괜찮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수돗물의 안전성을 불신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주부 김효주(30)씨는 "미세먼지가 난리더니 이번에는 먹는 물이 문제라고 해서 황당하다"며 "이제까지 자녀들에게 독밥을 지어 먹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모(29·대구시 남구)씨는 "끓여도 위험하고 정수기도 안 된다고 하니 더 불안한 것 아니냐. 여름에 더운데 대구에선 물도 마음껏 못 마실 판이다"고 말했다.

실제 대구시 동구 신천동의 한 마트에서는 수돗물 사태가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생수가 모두 동났다. 마트 점원은 "지난 22일엔 평소의 10배 수준으로 팔렸다. 생수가 없어서 못 팔았다"며 "23일에도 여전히 생수가 잘 팔려 나갔다. 24일 들어 생수 구매가 조금 잦아들긴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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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대구시청 2층 상황실에서 먹는 물 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 대책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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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민들이 이처럼 수질 안전에 불안감을 느끼는 데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사태'가 한몫했다. 당시 수돗물에 악취가 나 식수 대란을 겪은 기억이 혼란을 더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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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방류로 낙동강 오염소동을 빚었던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페놀을 드럼통에 넣어 임시로 마당에 보관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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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지난 22일부터 24일 현재도 대구 수돗물 문제를 해결하라는 청원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정수도 안 되고 끓여도 안 되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빨리 대안을 마련해 전 국민이 알 수 있게 투명하게 밝혀 달라.", "이제까지 아기에게 발암물질이 포함된 물에 분유를 타 먹이고 옷을 빨아 입히고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 "대구시와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를 처벌해 달라." 등의 비판적인 글이 100여 건 게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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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경북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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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대구시는 24일 "정수한 대구 수돗물에서 과불화화합물질인 과불화헥산술폰산이 매곡 취·정수장 0.259㎍/L, 문산 취·정수장 0.208㎍/L로 캐나다 권고기준(0.6㎍/L)보다 낮아졌다"며 지난 22일 검사한 결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정수 전 낙동강 매곡 취·정수장의 과불화헥산술폰산 검출량도 0.277㎍/L, 문산 취·정수장 역시 0.274㎍/L로, 대구 수돗물은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문산·매곡 취·정수장과 최초 과불화헥산술포산이 검출된 구미하수처리장까지의 거리는 50여㎞다.

대구시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과불화헥산술폰산을 배출하는 업체에 대해 저감조치를 취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검출량은 줄어들 것"이라며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대구 수돗물 취·정수장까지 물이 내려오는데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지금 검출되는 수치가 사실상 최대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구지역 환경단체들은 "신종 유해물질이 계속해서 대구 취수원에 잔류해 있다"며 "낙동강 보의 수문을 개방해 문제의 과불화화합물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과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녹색당 대구시당은 24일 공동 성명을 내 "4대강의 보로 인해 강물의 체류 시간이 10배 늘어 과불화화합물이 계속 취수원에 잔류돼 있다"며 "당장 수문을 열어 흘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8일까지 구미하수처리장 방류수에서 하루 평균 5.8㎍/L 과불화헥산술폰산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캐나다 권고기준(0.6㎍/L)보다 10배가량, 호주 권고기준(0.56㎍/L)보다 80배가량 많은 수치다.

과불화헥산술폰산은 불소와 탄소가 결합한 과불화화합물로 반도체 세정제와 프라이팬 코팅제, 살충제 등에 사용된다. 체중감소,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혈액 응고시간 증가, 갑상선 호르몬 변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동물실험 결과 확인됐다.

대구=김윤호·백경서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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