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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누가 제주 예멘 난민에게 돌을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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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주 찾은 예멘인에 ‘난민 혐오’ 폭발한 이유는…

정부 어설픈 대응에 무슬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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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14일 영화배우 정우성씨를 ‘개념 연예인’으로 추어올리는 기사와 댓글이 쏟아졌다. JTBC <뉴스룸>에 나와 미얀마 로힝야족 등 난민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당부한 뒤였다. 반년 만인 6월20일 이번엔 “정우성씨 항상 지지했지만 이번엔 아니에요” 등 반대와 혐오 댓글이 줄을 이었다. 정씨가 인스타그램에 “오늘 #난민과함께 해주세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올린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관련 유엔난민기구의 입장’이 화근이었다.

“#난민과함께” 정우성 글에 갑론을박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인 정씨의 ‘개념’은 반년 전 그대로다. 일관되게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을 뿐이다. 달라진 건 정씨가 아니라 여론이었다. 3800㎞ 떨어진 남의 나라 방글라데시의 난민캠프는 지지할 수 있지만, 한국에 들어온 난민은 ‘천하의 정우성’이 얘기해도 수용할 수 없었던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는 제법 역사가 깊다. 그렇더라도 난민에게까지 이렇게 공개적이고 조직적인 혐오 여론이 표출된 건 이례적이다. 2013년 말 영종도에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난민지원센터)를 개청할 무렵, 일부 주민이 치안과 불법체류자 문제를 제기하며 “혐오시설 설립 반대”를 외쳤지만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난민 혐오 여론이 이번에 유독 폭발한 배경에는, 난민이라는 존재조차 아직 낯선 한국 사회에 먼 나라 예멘에서 온 난민이 대거 입국한 ‘특수 상황’이 존재한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정부가 초동대응을 잘못해 쉽게 풀 수 있는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올해 들어 지난 6월14일까지 제주도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예멘인은 모두 561명이다. 이 가운데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법무부는 예멘인에게 ‘(제주도) 출도 제한’ 조처를 내리고, 예멘을 ‘무사증 입국 불허 국가’로 지정하는 등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과 정반대의 대책을 내놨다. 인구 5180만 명의 대한민국이 그 0.001% 수준인 예멘인 560여 명을 수용하는 건 큰 부담이 아닐 수 있다. 반면 2017년 말 기준 추계인구 63만4161명에 불과한 제주도가 예멘인 560여 명을 오롯이 감당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부가 출도 제한 조처를 내리면서, 예멘 난민 집단을 불필요하게 지역사회와 여론의 ‘표적’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 그래도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가 한국 사회에 난민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진 않을까, 그럼 걷잡을 수 없겠구나’ 우려했어요. 그래서 5월 말부터 난민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법무부에 예멘 난민의 출도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는데, 법무부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몰랐던 시기라….”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은 6월20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미 지난 5월부터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이 지역사회에 과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었다. 난민들은 6월 초 정부가 ‘6개월 취업 제한 조처’를 풀기 전까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법무부에 생계비 지원을 신청해도 대부분 받지 못했다. 제주 시내 한 호텔에 예멘인 100여 명이 집단으로 묵으며 이목을 끈데다 체류비가 떨어진 예멘인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주민들의 불안감도 늘어갔다. 이에 난민인권활동가들이 “출도를 시켜 서울이나 수도권에 이미 형성된 재한 예멘 커뮤니티에 흩어지게 하면 한국에 조용히 머물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법무부는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출도 제한 ‘헛발질’

정부가 공공연하게 드러낸 ‘차별적 태도’ 역시 예멘 난민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받는다. 법무부는 6월1일 예멘을 무사증 입국 불허 12개국에 포함시키기에 앞서, 5월21일 ‘제주특별자치도 무사증입국 불허 국가 및 체류지역 확대허가 국가 지정(안)’을 발표했다. 이를 보면 “예멘은 무사증 입국 허가 제도를 ‘악용’, 입국할 개연성이 상존”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세계 난민의 날인 6월20일에는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외국인 집단 거주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범죄예방 교육을 하는 등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한 활동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예멘 난민들은 제주도 무사증 입국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다. 예멘인들이 제주도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고도 없었다. 법무부가 아무 잘못 없는 예멘 난민들을 ‘무사증 제도를 악용한 파렴치범’ 내지는 ‘잠재적 범죄자’라도 되는 양 호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난민인권센터는 “제주 상황에 줄곧 침묵으로 일관해오던 법무부가 보인 이번 행보는 난민에 대한 시민의 오해와 편견을 확산하고 불안을 가중한다”고 비판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오히려 제도 남용, ‘가짜 난민’ 같은 프레임을 양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동대응 실패와 함께 일부 종교단체의 조직적인 반대도 갑작스러운 난민 혐오 분위기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 6월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 신청 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 청원에는 6월22일 오후 4시 현재 35만2천여 명이 동의했다. 일주일 가까이 메인 화면 상단에 ‘최다 추천 청원’으로 등재됐을 정도로 호응이 뜨거운데, 이 과정에서 보수 개신교 성향 일부 단체가 결집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들은 “제주도 이대로 가면 유럽 꼴 난다!”며 “가짜 난민”과 “범죄율 증가”를 막기 위해 이른바 ‘난민법 독소조항’ 폐지를 촉구하는 홍보물을 퍼나르고 있다. 이름을 올린 30여 개 단체 중 상당수는 동성애 혐오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선 전력이 있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자성을 촉구하는 상반된 목소리도 나온다. 개신교계 운동가인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는 6월19일 청와대 게시판에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 강화하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양 대표는 “성경에서 늘 강조하는 가르침이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 떠주고,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 돌보라는 것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천사를 접대하는 것이고, 강도 만난 자에게 끝까지 치료와 호의를 베푸는 이웃이 되라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사회가 난민 정책을 수립하고 감당할 제도를 갖추어가는 와중에 기독교인들이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거스르는 행위는 납득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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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여성주의 활동가의 혐오 키우기

양 대표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난민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성경적 가르침보다 이슬람 혐오 관행이 먼저 작동할 우려가 있어 보이는데, 이런 부정적 여론이 과잉 대표되지 않도록 하고 난민 문제를 전향적으로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청원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일부 여성주의 활동가나 맘카페 회원들이 난민 혐오 발화에 가세하는 현상을 조심스레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주도 예멘 난민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예멘 난민신청자 가운데 91%인 504명이 남성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대부분 전쟁이라는 폭력에 휘말리기 싫어 예멘을 떠난 남성들인데도, 이슬람 국가에서 온 남성들로 인해 지역사회와 난민 커뮤니티 내에서 강력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2016년 독일 쾰른 지역에서 벌어진 난민 연루 집단 성폭행 사건, 같은 해 제주도에서 무사증 입국 중국인이 저지른 성당 살인 사건 등 몇몇 극단적인 사례가 주요 근거다.

성폭력 등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 추방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내국인 남성 범죄자가 존재한다고 한국 남성 전체를 범죄자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반인륜적인 강력범죄가 빈발하지만 누구도 선진국 출신 남성을 모두 추방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내 외국인 범죄 통계를 살펴보더라도,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위험하다는 근거는 없다. 최영신 한국형사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공식 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을 보면, 2011~2015년 5년 가운데 2011년 외국인 검거인원지수가 가장 높았다. 그때도 외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은 1591명으로, 내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 3524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주민 인권활동가인 정혜실 이주민방송 공동대표는 최근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표현과 청와대 청원 사태를 지켜보며…’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소수자의 경험과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그 누구보다 그 편견과 고정관념의 희생자로 여성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야 했는지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전쟁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생존을 위해 도망쳐온 사회적 약자인 난민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정 대표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강간에 대한 두려움은 한 집단을 쫓아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강간에 대한 공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공포가 현실인 만큼 전쟁을 피해 도망 온 난민들의 절박함도 크다는 걸 인정하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확산된 여성들의 공포감

‘강남역 사건’ 이후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여성들의 공포감이 지나치게 확산돼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여성의 위험과 공포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보다 (남성 등) 개인에 대한 공포로 집중되는 측면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나영 집행위원장이 6월20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에서 여성들을 향해 던진 제안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두려움을 키우는 것보다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막연한 공포와 그에 근거한 혐오를 확산시키는 대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바꿔나가는 일에 우리의 마음이 모아지기를 바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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