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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르포] 거의 실명인데 큰 병원 좀…제주에 ‘갇힌’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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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난민 신청 예멘인 549명 중 468명 ‘출도 제한’

적십자사 쪽 “전쟁 겪고 와 다친 분 많은데…”

부상자 적절한 치료 못 받고 이산가족 되기도

활동범위 제한에 생계 위협…난민 보호의무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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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은 배꼽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팍부터 배꼽 아래까지 크게 찢어진 상처가 가로질렀다. 배 곳곳에 수술 자국이 있었다.

에브라힘은 예멘의 남서쪽 도시 이브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랍권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예멘은 잦은 분쟁으로 치안이 불안했다. 2014년 9월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수도 사나를 점령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전이 시작됐고,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후티 반군은 이듬해 정부가 제안한 헌법 초안을 거부하고, 하디 대통령을 항구도시 아덴으로 내몰았다. 2015년 3월에는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정부 연합군이 이란 세력의 확대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시작하면서 확전 양상을 보였다.

■ 평화로운 오후 배에 박힌 폭탄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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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의 집 바로 옆에는 후티 반군 기지가 들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내전에 개입한 지 두 달 뒤인 2015년 5월 오후였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 안으로 폭탄이 떨어졌다. 폭탄 파편이 집안 곳곳에 퍼지면서 에브라힘의 배에도 박혔다. 부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에브라힘은 나흘 동안 혼수상태에서 대수술을 받은 뒤 몇 달의 치료 끝에 겨우 살아났다. 집과 부모, 모든 것을 잃은 그는 고향인 이브를 떠나 자신을 도와줄 친구가 있는 하드라뭇으로 향했다.

예멘에서는 3년 넘게 전쟁이 지속되면서 1만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은 840만 명이 예멘 내전과 기근으로 아사 위기에 놓였다고 발표했으며 예멘을 ‘세계 최대 인도주의 위기 국가’로 규정했다. 전쟁을 피해 예멘을 떠나 전세계를 떠도는 피란민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여름에는 최악의 콜레라 발병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예멘에서 50만 명 이상이 콜레라에 걸렸고, 2천 명이 숨졌다고 보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에브라힘의 형제들이 생활비를 보내주긴 했지만 계속 신세를 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친구 하산이 있는 대한민국 서울에 가기로 마음먹고 지난 1월 고향을 떠났다. 에브라힘은 오만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들어왔다. 그는 제주도에서 서울로 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법무부가 4월30일 무사증 입국으로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를 떠나지 못하도록 활동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 항공사인 에어아시아나가 제주도~쿠알라룸푸르 직항 노선 취항(주 4편 운항)을 시작한 뒤 예멘인 561명이 제주도에 들어와 549명이 난민 신청서를 냈다. 갑자기 늘어난 예멘 난민에 놀란 한국 정부는 이들이 제주도를 떠나 본토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했다. 출도 제한 조처 대상이 된 예멘 난민은 총 486명이다. 법무부는 질병이나 임신, 영·유아 동반 등 인도적 사유가 있을 때만 출도 제한을 해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금까지 임신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예멘인 5명만 제주도를 나가도록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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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은 폭격 때 다친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서울에 가서 친구 하산의 도움을 얻어 치료받고 싶다. 제주의 작은 안과병원에서도 큰 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하 출입국청)에서는 에브라힘이 서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출도 제한 조처로 이산가족이 된 형제도 있다. 인천에 사는 예멘 난민 압둘라는 6월21일 전화 인터뷰에서 “동생 헤탄이 제주도에 혼자 있어 데려오려 했는데 출입국청에서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압둘라와 이삼, 헤탄은 친형제다. 압둘라와 이삼은 한국에서 중고차를 사서 예멘에 가져다 파는 일을 했다. 2014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내전 상황이 악화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진 압둘라와 이삼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인도적 체류 기간이 연장됐을 뿐이다. 2018년 5월 현재까지 난민으로 인정된 예멘인은 23명이다.

■ 정부의 출도 제한에 병치료도 요원

<한겨레21>과 제주도에서 만난 헤탄은 기자에게 오른쪽 바지를 걷어 종아리 흉터를 보여줬다. 그는 “폭탄 파편에 맞아 다쳤는데 아직 쇳조각이 종아리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헤탄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제주도의 한 돼지고기 식당에서 일한다. 압둘라는 “동생은 먹지도 못하는 돼지고기 식당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한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한국 정부가 우리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이렇게 지내다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 나라들을 보면 전쟁이 끝난다고 바로 안정되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에브라힘과 헤탄을 비롯한 예멘 난민들의 출도 제한 조처 과정에서 정부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공익법단체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멘 난민들은 출도 제한 조처에 앞서 “활동 범위를 제한한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받았지만 한국어로 적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아랍어나 영어로 된 설명도 없었다. 이들은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출입국청을 방문해 신분 확인차 공무원들에게 여권을 건넸는데 돌려받은 여권에 출도 제한 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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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단체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이런 내용을 이유로 제주 지방법원에 ‘체류허가지역제한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맡은 권소영 변호사는 “제주 출입국청은 예멘 난민들의 활동 범위를 제안하는 이유는커녕 여권에 도장을 찍겠다는 설명도 없이 이들의 출도를 제한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출입국청은 ‘공공의 안녕질서나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체류하는 외국인의 활동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예멘 난민들의 출도를 제한했는데 기준이 모호하고 법률 자체가 위헌성이 있다. 한국이 맺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26조는 난민에게 협약 체결 국가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몰려든 예멘 난민 500여 명을 제주도에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6월 초에는 돈이 떨어져 노숙하는 예멘 난민이 속출하자 법무부는 11일 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 수 있도록 임시 조처했다. 원래 난민신청자는 체류 기간이 6개월이 지나야 일할 수 있다.

제주 출입국청은 6월14일에는 어업, 18일엔 식당·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주민들과 연결해줄 계획을 세웠다. 첫날엔 470명이 모였고, 271명이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구해 제주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둘쨋날에는 새벽 4시, 동이 트기 전부터 출입국청에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예멘 난민이 모여들었지만 계획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여러 요구사항이 많은 주민과 난민신청자 사이를 중재하기 쉽지 않았다. 아침에 온 순서대로 업주들과 연결해줄 계획이던 채용박람회는 잠시 중단됐고, 주민과 난민이 자율적으로 접촉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계약서를 쓰고 일터로 이동한 뒤 6월22일까지 출입국청에 신고하도록 했다.

식당·서비스업 사업장주는 60명밖에 되지 않았다. 어업보다는 쉬워 보이는 식당 일자리가 적어 예멘 난민들은 실망했다. 출입국청은 어쩔 수 없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출입국청 관계자는 “(6월)14일과 18일에 각각 271명과 131명을 취업시켰다. 이들 중 적응하지 못해 돌아온 사람이 50명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 고기잡이배 탔다 멀미만 하고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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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 일자리를 구해 어촌으로 간 친구들에게 일이 고되다는 이야기를 들은 예멘 난민들은 고기잡이배에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알수가는 “목요일에 일자리를 찾아 고기잡이배를 타러 간 친구가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다.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식당 일자리를 구하려고 새벽 5시에 14번째로 와서 줄을 섰는데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이날은 예멘 난민들이 공식적으로 정부를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일자리를 찾아 제주도 곳곳으로 떠났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제주 시내로 돌아오는 예멘 난민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6월18일 출입국청에서 예멘 난민을 데려간 한 선주는 2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난민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묻자 “말 맙수게”라며 곤란해했다. “처음에 행정 절차상에 문제가 있어 통제소에서 배에 태울 수 없다고 했다. 출입국관리소에 별도 허가를 요청하고 선원 공제까지 가입시켜서 6월20일 배에 태웠는데, 배에 타자마자 멀미를 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누워 있다가 이튿날 항구로 돌아왔다. 괜히 데려나갔다가 일만 망쳤다.” 선주는 “이웃 배까지 다섯 곳이 예멘 난민을 데려왔는데 세 곳은 일을 못해서 되돌려보냈다”고 토로했다. 제주이주민센터 한용길 사무처장은 “당국이 예멘 난민신청자를 무작정 일자리로 보낼 것이 아니라 한국어 교육과 노동 관련 법 교육을 하고 내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예멘인들은 통역 서비스도 받기 힘들어서 제주도민과 소통이 거의 안 되는 상황이다. 일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제주도가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수용하기에는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성인 제주예멘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제주도에는 예멘 난민을 포용할 만한 커뮤니티가 없다.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에는 아랍권 이주민 커뮤니티가 있어서 자체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흡수될 수 있는데 제주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7년 말 기준 법무부 자료를 보면 제주도에 거주 중인 예멘인은 21명이었다. 김 위원장은 “제주도에서는 농축수산업 아니면 요식업이 산업의 전부인데, 예멘 난민들은 의사소통이 안 돼 요식업에서 일하기 어렵고 농축수산업도 경험이 없어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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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어도 부모의 동의를 받을 수 없어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 미성년자도 있다. 17살 요셉은 6월14일 고용주와 근로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갔다. 고용주는 외국인등록증 나이를 확인한 뒤 출입국청 공무원과 대화하더니 “일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 요셉은 6월18일에도 한 선주와 이야기가 잘되나 싶다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이번에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중 26명이 요셉처럼 18살 미만 미성년자다.

요셉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모두 예멘인이어서 예멘 국적을 가졌다. 전쟁을 피해 사우디로 향하는 예멘인이 늘자 사우디 정부는 체류 예멘인에게 점점 더 많은 세금을 물렸다. 사우디에서 나고 자라 사우디 억양의 아랍어를 구사하는 요셉은 예멘으로 돌아가면 연합군으로 오해받아 반군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요셉은 “미성년자여서 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고살 게 없는데 학교에 갈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질병이 있는 예멘 난민들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당뇨를 앓는 압둘라는 하나 남은 인슐린 병을 보여주며 “이거 하나로 버틸 수 있는 게 최대 일주일인데 출입국청에 갔더니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했다. 돈도 없고, 어디에서 인슐린을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18일부터 사흘간 출입국청에서 예멘 난민들을 진료한 대한적십자사 이기훈 재난구호팀장은 “전쟁을 겪고 온 난민들이라 다친 이가 많았고, 젊은 남성이 대부분인데도 만성질환 환자가 많았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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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 보호의무 다하지 않는 정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6월2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난민신청자)들을 대놓고 배척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제주도가 이 부담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예멘 난민들에 대한 출도 제한 조처 해제와 조속한 난민 심사 마무리를 중앙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6월26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제주포럼에 참석하는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을 보호하지 않고, 이들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면서 생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난민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정필 변호사가 말했다. “난민신청자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불안정하게 살게 하는 것은 사실상 전쟁이 진행 중인 조국으로 강제송환하는 것과 다름없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있어 도드라져 보이지만, 육지에서도 난민은 열악한 환경에 있다. 사실상 자기 나라에 돌아갈 수 없어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예멘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제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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