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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달라진 지방권력,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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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결과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7석 중 14석, 기초자치단체장 226석 중 151석을 석권하며 지방자치단체장의 절대다수를 자당 당선자로 채워넣게 됐다.

이러한 지역 내 소규모 ‘정권교체’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지방자치의 미래와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주제다. 특히 과거 보수정당 소속의 단체장이 줄곧 자리를 맡았던 지역에서는 변화의 물결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지방권력 교체가 지역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짚어봤다.

309표 차이였다. 경기 여주시장 후보로 출마한 이항진 민주당 후보는 전체 투표수 중 0.57% 차이로 상대 후보를 따돌리고 시장에 당선됐다. 경기도 내 31개 기초단체장 선거 중 최소 표차의 승리였다. 여주는 1998년 6월 치러진 제2회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줄곧 보수정당 단체장을 선택해 왔을 만큼 보수색이 강한 지역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보수성향 유력후보들이 단일대오를 이뤘다면 이항진 당선인의 승리는 어려웠다. 실제 개표과정에서도 마지막으로 사전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뒤지고 있던 이 당선인은 사전투표에서 결과를 뒤집으며 신승할 수 있었다.

33.87%의 득표로 당선된 만큼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시정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당선인을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3분의 2가량의 주민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를 꾸리면서 지역에서 꼭 맞는 인사 한 명을 인수위원으로 초빙하려 했는데 그분이 끝끝내 고사했다. 자신은 민주당과 이항진을 누구보다 지지하지만 자신이 나서면 주변에서 ‘왜 그쪽과 손잡느냐’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올 것이라 도저히 감내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아직도 지역에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양심’조차 자유롭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수적 지역여론은 이 당선인이 7월부터 시작되는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만난 암초다. 시장보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시정을 펴겠다고 공언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참여조차 눈치를 보게 만드는 지방자치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적당히 물러설 생각은 없다고 이 당선인은 말했다. 이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책사업이던 4대강 사업에 맞서 4대강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전국상황실장까지 맡았던 이력이 있다. 남한강변에서 운영하던 큰 식당은 그가 4대강 반대투쟁에 나서며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어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남한강 수계를 끼고 있는 여주는 이미 2010년 수도권에 큰 비가 왔을 때 인접 하천인 연양천에서 다리가 무너진 적이 있을 정도로 4대강 사업의 피해를 본 지역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에는 4대강 사업이 잘된 사업이라고 보는 여론도 강하다. 이 당선인이 “활동가로 있을 때와 시장으로 일할 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4대강 관련 문제는 시장으로서 타당성이나 미래 비전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도 “시민들이 나서서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면 시장으로서 그런 움직임을 지원하고 반대여론을 몸으로 막아내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의 강경한 활동 대신 지역 여론을 살피겠다는 뜻도 읽히지만 무엇보다 여러 사정으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을 위해 시장이라는 직책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방파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앙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 적폐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일시적이나마 지역에도 돈이 들어오는 것이 ‘적폐’는 아니다. 오히려 지역의 적폐는 흔히 말하는 ‘중앙’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 사실 예산이 들어올 곳은 뻔한 기초지자체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주민이 체감할 정도로 후생을 높이는 것은 이 당선인에게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청 이전 대신 아직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농촌지역에 수도를 확충하거나 학교를 세우는 등 가능한 부분부터 개선하는 방책도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4대강 사업은 지역 경기를 진작시킨다는 명목으로 시행됐지만 사업으로 수혜를 입는 일부 집단의 목소리만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건설사업이 끝나면 돈줄이 끊어져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지만 여전히 여론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집단의 영향력은 지속되고 이에 반대해 주민생활을 개선하자는 요구는 가로막힌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여주시의원에 당선돼 시의회 의정활동을 거친 이 당선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시정 참여가 가로막히는 지점이 적폐의 시작”이다.

인구 100만명을 넘어서는 대도시에서는 그동안 같은 성향의 단체장이 지방권력을 장기간 유지해 오면서 잠복하고 있던 폐해의 규모도 더욱 커진다.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구호에 민감한 지역 정치인이 경기 활성화의 첨병을 자처하는 지역 건설업계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남 창원시장으로 뽑힌 허성무 당선인이 지역 내 최대 건설사업인 마산해양신도시 사업의 재검증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은 그동안 지방선거로 단체장이 교체되더라도 대규모 건설사업은 건드리지 않던 관행에 비춰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이미 창원시가 마산해양신도시 사업자에 대해 두 차례나 부적격 판정을 내릴 정도로 사업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상황이긴 했지만 허 당선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건설업체와 이전 시 당국의 정책에 반하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마산해양신도시는 가포신항 등 마산항 항로 준설을 하면서 나온 토사를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마산만을 메워 만든 인공섬이다. 창원시와 건설업체의 주장대로는 공사비만 3403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다. 그러나 당초 관광·업무중심지구 개발을 목표로 진행되던 사업은 아파트와 상업시설 등 부동산 중심으로 방향을 틀면서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대안으로 공영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가포신항 역시 물동량이 부족해 컨테이너 항만 기능을 상실하면서 대표적인 국책사업 실패 사례로 전락했다. 게다가 국비 지원 건의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막대한 시 예산이 소모될 위기에 처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터였다.

“첫째로 공사비 검증단을 구성해서 3403억원에 이르는 공사비가 정말 들어갔는지 제대로 검증부터 한 뒤 아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아껴 필요한 땅부터 확보하려고 한다. 그 다음 그 땅 위에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려고 한다.” 절차적으로는 크게 이견이 나오지 않을 만한 방안이지만 사업의 가장 핵심인 부지 용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비칠 정도로 허 당선인의 입장은 강경하다. 허 당선인은 “개인적으로는 ‘스마트시티’를 건설한다는 대안을 갖고 있지만 이것 역시 각각의 의견 중 하나일 뿐이며, 최종적으로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최적의 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허 당선인은 인수위원회를 방문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접견한 후 첫 방문지로 해양신도시 현장을 선택했다. 해양신도시 사업은 지역 내 최대 현안 중 하나면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실질적 권한과도 관련된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사업의 계획단계이던 2005년 당시에는 중앙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의 매립정책과 맞물려 시행됐지만 2019년 완료 예정인 사업이 현재 73% 정도의 진척에 머무르면서 지연될 경우 부담은 창원시 재정에 지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중앙정부와의 의견 조율 실패는 이전 시장 때부터 넘겨받은 과제지만 결과의 책임을 허 당선인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고려한 듯 허 당선인이 꾸린 인수위의 위원장도 건설·토목 전문가인 어석홍 창원대 교수가 맡았다. 어석홍 인수위원장은 “해양신도시의 2차에 걸친 공모과정에서 난맥상이 발생했음에도 뚜렷한 대안 없이 무리하게 다시 공모를 추진한 이유부터가 궁금하다”며 그동안 진행한 창원시의 의사결정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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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역량 따라 시민 경제도 달라져

창원은 과거 통합 이전 마산·창원·진해시 시절부터 보수성향의 정치인을 시장으로 배출해 왔다. 민주당계 후보가 이 지역에서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허 당선인의 출신지역이긴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 투표성향이 강했던 마산합포구나 군사도시인 진해구에서 보수세가 강하기 때문에 첫 민주당 시장에 대한 평가도 이 사업을 포함한 지역경기 회복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한국지엠 사태가 벌어진 점을 비롯해 지역 내 제조업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허 당선인에겐 위기이자 기회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입증되면 현재의 지지를 이어갈 수 있지만 언제라도 지역민심이 돌아설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새로운 시장의 역량에 따라 시민의 경제사정도 크게 좌우될 여지가 크다. 창원시의 올해 예산규모는 2조7003억원에 달한다. 해양신도시 사업 공사비 검증을 통해 창원시가 앞으로 상환해야 할 1200억원이 넘는 돈 중 상당 부분을 절감하면 그만큼을 제조업 중심인 지역경제 기반 확충이나 복지·교육·보건 등의 분야에 더 쓸 수 있다. 창원시의 사례는 견제와 감시를 통한 지방자치의 실질적 이익이 정권교체를 통해 현실의 주민생활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한 것이다.

‘견제와 감시’의 측면에서 보면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전 보수정권의 영향이 남아있던 지자체와 지방의회를 유권자들이 물갈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급 지자체장의 시·도정을 감시하는 역할인 광역자치단체 의원 수만 보면 민주당은 전국의 824석 중 652석을 장악했다. 2014년 지선에서 얻은 349석보다 무려 300석 이상을 더 얻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416석에서 137석으로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중선거구제를 실시하는 기초자치단체 의원 수도 민주당이 전국에서 1638석을 얻으며 2014년의 1157석보다 크게 늘어난 반면, 자유한국당은 1413석에서 1009석으로 크게 줄었다. 광역의회만 봤을 때는 민주당이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 여당의 입지를 점해 오히려 야당의 견제가 작동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가 됐다.

시장과 도지사를 변함없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택한 대구·경북지역은 광역·기초의회 역시 자유한국당이 유이하게 여당을 차지한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나타났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민주당 소속의 지역구 광역·기초의원 당선인들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 대구시의원 지역구 당선자는 모두 4명(전체 27명), 경북도의원 지역구 당선자는 칠곡·구미·포항·의성에서 모두 7명(전체 54명)이 나왔다.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대구시의회 전체 30석 중 25석이 한국당, 5석이 민주당에 돌아갔고, 경북도의회 전체 60석 중 41석이 한국당, 9석이 민주당, 1석 바른미래당, 9석 무소속 등으로 비한국당이 19석을 차지하게 됐다.

일당 중심 광역의회가 바뀜에 따라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의회 구성에 있다. 그동안 광역의회 의장과 부의장 2명, 5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자유한국당이 독점하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이번 지선 이후로는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 자리 1곳씩을 민주당 몫으로 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광역·기초의회가 연간 2회의 정례회와 단체장의 요구 등에 따라 열리는 비정기적 임시회 등 연간 회기 일정은 국회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원내 의석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보다 밀도 있는 견제는 가능해지는 길이 열렸다.

지역 정가에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 지역위원회와 같은 기초조직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던 비보수정당에서도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인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로 당선된 강민구 대구시의원 당선인도 “당초 수성구청장에 출마하기로 했지만 (지역 정치권의 사정을 생각해) 시의원 출마로 마음을 돌렸다. 그동안 보수정당이면 무조건 당선됐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주민들 곁에서 사라졌던 대구지역 정치인들의 모습 대신 당선 이후에도 주민들 곁에 있는 시의원을 보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의 작은 정권교체가 주민들에게는 견제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반대로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언제든 심판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은 작지만 큰 변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의원에 당선된 뒤 이번 선거에서 충남 서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맹정호 당선인이 도의회 의정활동을 통해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서산을 기반으로 도의원이 돼서 민주당 도지사와 보수정당 시장의 행정을 견제하는 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광역과 기초단체 간의 두드러진 갈등은 없지만 그렇다고 활발한 견제나 의사소통이 벌어진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는 것이 맹 당선인의 평가다. 충남과 서산은 선거 때마다 승리한 정당이 바뀔 정도로 ‘스윙보터’ 성향을 나타내긴 했지만 막상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활동은 정체돼 있었다는 것이다.

TK에서도 진보정치 풀뿌리 기대감

과거 6차례의 지방선거에서 서산은 두 번은 자유민주연합을, 두 번은 새천년민주당 등 민주당계 정당을, 나머지 두 번은 새누리당 등 한국당계 정당을 시장 선거에서 선택했다. 전반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라 맹 당선인도 이번 선거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맹 당선인이 표심을 얻기 위해 중점적으로 방문한 곳이자 당선 후 첫 방문지가 서산오토밸리산업단지 폐기물매립장 반대 시위현장이었던 점은 지역에 밀착된 현안을 바탕으로 민심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오토밸리 산폐장은 당초 오토밸리 산업단지 내 폐기물만을 처리하는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인근 지역의 폐기물까지 반입하게 된 상황에 서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며 반대여론을 키워왔던 것이다.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산폐장 반대를 명확히 하고 나섰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명목상으로는 중앙정부와 충남도가 얽혀 있어 시의 권한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결국 시장을 바꾸는 것은 변화의 시작에 그친다. 시민들의 주도적인 움직임이 이어져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맹 당선인은 “인수위를 꾸리고 나서 연달아 시민들과의 간담회를 거치며 공약으로 산폐장 재검토를 내걸었던 것이 시민들의 여론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눈치를 보며 미뤄두는 지방자치 대신 시민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여건을 만들기만 해도 시장으로서 만들 수 있는 변화의 책임은 다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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