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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버튼은 눌러졌다…미·중·러 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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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트럼프 대통령이 누른 우주전쟁 버튼

우주는 단 한 번도 전쟁터였던 적이 없다. 물론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달에 도착하느냐를 경쟁한 것이었지, 진짜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냉전이 한창이던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가 우주 공간에서 도킹했다. 양국의 우주인들은 해치를 열고 나와 악수를 했다. 또 선물을 교환하고 함께 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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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나사(NASA) 케네디 우주센테어세 X-37을 실은 로켓이 발사됐다. X-37은 아직도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미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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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탕트(화해)의 공간이었던 우주에서 곧 냉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전 장면이 펼쳐질지 모른다. 우주전쟁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우주군(Space Force) 창설을 선언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이 우주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는 공군과 우주군을 갖게 될 것이다. (둘은) 별개이지만 대등하다”고 강조했다. 미군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등 5개의 군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우주군을 더하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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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정찰기인 U-2 조종사들이 조종복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U-2와 같은 전략정찰기는 고고도를 날기 때문에 조종복이 우주복과 거의 비슷하다. [사진 미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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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우주군 창설의 배경에 대해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다른 국가가 우리를 앞서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곧바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우주군 창설을 지시했다.

우주군 창설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 의회는 지난해 7월 공군 산하에 ‘우주대(Space Corps)’를 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방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3월 13일(현지시간) ”우주도 육해공과 마찬가지로 전투지역”이라며 ”우리는 우주군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철 전 공사 교장(예비역 공군 중장)은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지키려면 우주, 사이버와 같은 공간에서도 압도적으로 잠재적 적국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군 당국은 겉으론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토를 달지 않았다. 미 국방부 데이너 화이트 대변인은 “대통령의 지시를 이해하며, 우주군 창설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우주군 창설은 의회의 입법을 거쳐야 하고 세부적 계획이 필요한 데 아직 착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러시아는 발끈했다. 러시아 상원 군사안보위원회의 빅토르 본다레프 위원장은 “우주를 군사화하는 것은 재앙에 이르는 길”이라며 “미국이 1967년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우리(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도 따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7년 조약은 유엔이 결의한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을 말한다. 이 조약은 우주에 대량살상무기 배치를 금지하며 달과 다른 천체를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생 ‘우주군’의 모습은



SF 영화나 게임 속 우주군은 화려하다.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나 ‘에일리언 2’의 우주해병,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마린(해병), 게임 ‘헤일로’의 수퍼솔저는 기관총 비슷한 무기로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는다. 영화 ‘스타워즈’나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갤럭티카’에선 우주 공간의 공중전이 그려졌다. 현실 속 미 우주군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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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헤일로'의 수퍼솔저 모습. [사진 343 인더스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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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우주군은 평상시 인공위성을 관리하고 군사용 우주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사시 적의 통신ㆍ정찰ㆍGPS 인공위성을 무력화하고 아군의 인공위성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에서 통신ㆍ정찰ㆍGPS 인공위성이 없어진다면 눈과 귀 없이 싸우는 셈이 된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공격하는 무기도 개발하고 있는데 실전배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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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이 만든 무인 우주왕복선 X-37. 정식 명칭은 궤도 시험선(OTV)이다. [사진 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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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우주군은 각 군에 흩어진 우주 관련 부대를 통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육군의 우주ㆍ미사일 사령부(SDMC), 해군의 네트워크ㆍ우주작전사령부(NNSOC)와 우주ㆍ해상전 시스템 사령부(SPAWAR), 공군의 우주사령부(AFSPC), 해병대의 해병 전략사령부(MARFORSTRAT) 등이다. 또 기존 부처와 사령부의 겹치는 임무를 조정할 것이다. 특히 핵전쟁을 담당하는 전략사령부(USSTRATCOM)와 미사일방어를 맡는 국방부 미사일방어국(MDA),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등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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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초음속 무인 전략정찰기 SR-72. [사진 록히드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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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찰위성을 관리하는 국가정찰국(NRO), 전 지구의 지형 정보를 수집ㆍ분석하는 국가지형정보국(NGA)은 우주군에 흡수될 수 있다. 항공산업 전문지인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나사(NASA)의 항공연구센터가 있는 에드워즈 공군기지와 미군의 우주ㆍ미사일 개발 메카인 반덴버그 공군 기지가 미 우주군의 주요 기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X-37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주군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보잉이 만든 X-37은 궤도 시험선(OTV)이라고 불린다. 한마디로 ‘무인 우주왕복선’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 발사돼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하나가 지난 4월 남태평양으로 추락했던 중국의 우주 정거장 톈궁(天宮) 1호를 감시했다는 관측이 있지만, 정확한 임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록히드 마틴이 개발하고 있는 극초음속 전략정찰기인 SR-72가 완성된다면 우주군에서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개발 목표가 대기권 밖인 외기권에서 극초음속(마하 5 이상)을 비행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거센 도전



트럼프 대통령 설명대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우주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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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중국은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미사일 개발의 진짜 목적은 인공위성 요격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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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1992년 우주군을 만들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경제난으로 97년 해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 2001년 우주군을 재창설했고 2011년에 우주항공방위군으로 개편했다.

러시아 우주항공방위군은 군사용 우주선을 발사하는 게 주요 임무다. 러시아 우주항공방위군은 2015년 8월 다시 공군과 합쳐졌다. 러시아 공군의 정식 명칭이 항공우주군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러시아는 미국 다음 가는 우주 강국으로 꼽힌다.

최근 중국의 도전이 거세다. 중국의 군사적 우주 작전 임무는 연합참모부 전략지원부대(SSF)의 우주(航天)계통부(SSD)가 맡고 있다. 우주선 발사, 우주 정보 활동, 우주 공격ㆍ방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 군사 전문가인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주계통부의 유인 우주 계획을 담당하는 조직은 3000개 이상의 단위(부서ㆍ집단ㆍ기업)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며 “2016년 기준 181개의 중국 인공위성이 우주를 날고 있다. 이 가운데 40여 개가 군사적 인공위성으로 추정하는데, 상업위성 가운데서도 군사적 목적을 숨긴 게 상당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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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찰 인공위성이 획득한 정보를 수신하는 이글비전 시스템 안테나. 미 우주군이 만들어지면 안테나 관리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미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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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토드 해리슨 연구원은 “우주군이 만들어지면 우주의 전문성을 가진 장교단을 보유할 수 있다”며 “그들을 통해 우주 전략과 우주전 교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주군 창설에 긍정적인 해리스 연구원도 “창설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군과 독립한 우주군을 창설하는 과정에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미 의원들이 우려하기 때문이다. 공군과 역할 구분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빌 넬슨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다행히 대통령은 의회 없이 (우주군 창설을) 할 수 없다. 지금은 공군을 갈라놓을 때가 아니다”고 썼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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