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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다들 총 들고 있으니 스스로 결정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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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20)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레이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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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니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까렌투쟁 최대 승리 이끈 ‘전설’
“죽기 전 진짜 평화 볼 날 올까”


버마가 독립하던 1948년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일흔이다. 열여섯에 전사로 뛰어들었으니 전선 나이로 쉰넷이다. 세계 최장기 전선 기록을 이어온 그이는 이미 전설급으로 들어섰다. “후회 없다. 우리 까렌 사람들 받들며 싸울 수 있었던 게 오직 영광일 뿐이지.” 높낮이도 꾸밈도 없는 말투에다 무뚝뚝한 표정 딱 하나뿐인 그이를 볼 때마다 한 경계 넘은 수도자 느낌을 받는다. ‘외길 인생’들만 풍길 수 있는 권리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전사로 산 54년 외길 인생

그렇다고 카리스마와 독단을 놓고 헷갈리며 그이를 대할 일은 없다. “인터뷰 자리 자네가 편한 데로 정해 봐. 나야 여기(테이블 앞)든 바깥이든 다 좋으니.” 이게 버마 국경 소수민족해방전선에서 저마다 “조니”를 입에 올리는 까닭이다. 남한테 마음을 쓸 줄 안다는 뜻인데, 여태 내가 봐온 제대로 된 게릴라 지도자들은 다 그랬다. 나는 전선에서 그런 ‘잔정’을 통해 게릴라 지도자들 됨됨이와 깜냥을 가늠해 왔고.

“1964년 고등학교 때야. 버마 군인들이 마을에 와서 돼지든 닭이든 닥치는 대로 빼앗아 가며 행패 부렸지. 참다못해 그 군인들 총 네 자루를 훔쳐 까렌민족해방군으로 도망쳤어.” 그렇게 전사가 된 조니는 1980년대 중반 제19대대장으로 까렌투쟁사에서 최대 승리로 꼽는 노우턴마을 전투를 이끌었다. “버마 정부군 제38대대 70명을 날리고 총과 대포 50여정을 거뒀지. 우린 동지 넷을 잃었고.” 세계게릴사전사를 훑어봐도 단일 전투에서 이만한 기록은 흔치 않다. 말 그대로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조니는 2007년 제7여단장에 오른 뒤 2012년부터 까렌민족해방군 총사령관으로 해방투쟁을 이끌어왔다.

“2012년 정부군과 휴전 뒤에도 심심찮게 전투 소식 들렸는데, 올 5월에도?” “정부군이 우리 해방구 쪽으로 길 닦겠다고 넘어왔어. 휴전협정 위반이지.” “휴전 중 발포 명령은 누가 내리나?” “휴전협정 뒤로 발포권은 야전 지휘관들한테 넘겨놨어. 정부군이 통지 없이 단 한 치라도 넘어오면 자동발사로.” “정부군 총사령관이자 최고 실권자인 민아웅흘라잉 몰래 만나고 왔다면서?” “비밀도 아냐. 따졌더니 도로건설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만 하더군. 그러니 장마 끝나면 또 몰라. 민아웅흘라잉도 말뿐인 사람이야. 믿을 수 없어.” 조니는 스스로 이끈 휴전협정도 도마에 올렸다. “이 휴전협정이란 건 종이쪽지야. 까렌 사람들 권리를 보장한 것도 아니고 국경 경계비를 세운 것도 아니니. 죽기 전에 진짜 평화란 걸 볼 수나 있을까.” 이게 그동안 버마 정부와 군이 선전해온 휴전협정의 실상이다.

“근데 2년 전부터 동맹군인 몬민족해방군(MNLA)과 왜 치고받았는가? 눈꼴사나운 적전분열인데?” “땅 문제야. 본디 작은 그쪽을 우리가 영토나 군사로 많이 도와 왔잖아. 근데 1994년 그쪽이 정부군과 휴전협정 맺으면서 우리 땅을 넘겨버린 거지. 잘못한 거지. 올 3월에 해결했고 이젠 조용해.” 이 백전노장은 정부군이든 동맹군이든 상대가 있는 사안들에서도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낸다. 외교적 수사 없는 그이와 인터뷰가 즐거운 까닭이다.

“다른 생각 받아들이면 그만”

“예민한 이야기 하나 해보자. 요즘 까렌민족해방군 남부 6여단이나 서부 1여단, 3여단 쪽에서 내분 소식이 흘러나온다. 중간급 지휘관들이 이탈할 것이라는 말도 돌고?” “듣고 있다. 근데 어떻게 알았나?” 워낙 깊은 데서 나온 정보라 웬만하면 잡아떼거나 발뺌할 만도 한데 그이는 곧장 인정해버린다. “휴전협정 끼고 정치에 불만 지닌 이들이 있지 않겠나. 안에서 말썽 피울 바에야 떨어져 나가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그동안 까렌민족해방군은 왜 분파주의와 이탈을 못 막았나? 1994년 까렌민주불교군(DKBA), 2007년 까렌민족연합/까렌민족해방군 평화회의(KNU/KNLA-PC)로 줄줄이 떨어져나갔는데, 또 이탈자 생기면 치명적이지 않겠나?”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그만이야. 다들 총 들고 있으니 스스로 결정하면 돼.” 그이는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한다. 국경 전선에서는 총이 정치고 총이 답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은 내부 사정이 궁금해 이런 저런 사족을 달고 나오길 바라며 던진 물음인데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끊어 치는 대답에 맥이 빠져버린다. 하기야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선에서 일생을 보낸 그이한테 두려울 것도 심각할 것도 달리 없겠지만.

빗줄기가 굵어진다. 조니는 8월12일(까렌 순교자의 날) 오라고 초대하며 자리를 털었다. 그이가 떠난 자리에는 아쉬움이 길게 남았다. “후손한테 해방 세상을 못 물려준 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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