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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디지털스토리] 주 52시간…저녁 있는 삶 될까, 월급만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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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시행…"장시간 노동문화 개선" vs "노동자 근로소득 감소" "생산성·일자리 늘어날 가능성"…"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커질수도" "사업주·근로자 성과공유제 활성화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이지성 인턴기자 = "회사 들어간 지 딱 6개월 만에 우울증이 생기더라고요. 만들어야 하는 스타일 수는 많은데, 일할 사람은 적다 보니 주 3일은 저녁 11시 넘어 퇴근했어요. 주말에는 품평회 등으로 제대로 쉬지 못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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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패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업종을 바꿔 이직한 안 모(28)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 씨는 "퇴근 시간과 주말이 보장되고 업무량이 좀 줄었다면 관련 업계를 떠나진 않았을 것"이라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안 씨처럼 장시간 근로에 노출된 직장인은 적지 않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노동시간이 300시간 더 많다. 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부는 최대 68시간이었던 주당 근로시간을 다음 달 1일부터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두고 반응은 엇갈린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노동자의 임금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 6개월 계도 기간을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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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기업 야근 문화 여전히 '낙제점'

"통상적으로 드라마가 시작되면 메인 PD는 주 7일 하루 15시간 정도 일하는데, 막내는 거기에 21시간을 더 일해요. 이동할 때만이라도 쉬려고 하면 선배들이 '조연출이 자느냐'면서 대본이라도 보라고 하죠"

조연출 3년 차인 A 씨의 경험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과로사 예방 센터 토론회에 담겼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B 씨는 "우리 회사에서 야근은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동료에 대한 헌신성, 이기주의자인지 아닌지 결정해주는 척도"라며 "선배들은 신입 시절 철야한 이야기를 자랑삼는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지난 5월 내놓은 '한국 기업의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전 후진적 기업문화 요소로 지적받았던 습관적 야근이 다소 개선됐으나 여전히 낙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대기업 직장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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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으로 우울함을 느끼는 직장인도 증가 추세다.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지난 2월 분석한 직장인 사춘기 관련 빅데이터 자료를 보면 '야근'이라는 단어가 우울증 게시글에 언급된 경우는 2016년 196건에서 2017년 1천416건으로 무려 7.2배 증가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과도한 노동시간이 줄고 일·가정 양립에도 일정 수준 이상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신규일자리 창출, 여가시간 증가로 인한 내수경기 활성화, 저녁과 휴일이 있는 삶이 실현될 거라고 기대한다.

◇ '저녁 있는 삶', '생산성' 향상 기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최근 직원 수 300명 이상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9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개인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직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이 기대된다는 응답이 각각 71.7%, 55.0%(복수응답)으로 가장 많았다.

GS홈쇼핑에서 일하는 김모(35) 대리는 최근 여가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출근 시간이 30분 늦춰지고 6시에 퇴근하면서부터다. 그는 "주 52시간 도입에 맞춰 회사에서 '뭉클(뭉치면 클래스가 열린다)'이라는 무료교육을 도입했는데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어 들어볼까 생각 중"이라며 "요즘은 회사에서 요가를 배우거나 집에 가서 반려견과 산책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생산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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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8일 국제경제학회 하계 정책심포지엄에서 "사업체 1만1천692개를 대상으로 국내에서 2004~2011년 단계적으로 도입된 주 40시간 근무제를 분석한 결과, 근로시간은 2.9% 감소했지만 1인당 부가가치 산출(노동생산성)은 1.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 방안' 보고서에서 "지난 25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영향을 추정한 연구가 다수 이뤄졌다"며 "국내 여러 연구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실근로시간, 고용, 임금에 미친 영향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임금 감소, 일자리 정체 우려도

우려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 밝힌 한 여성은 지난 6일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예비신랑이 대기업의 2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데 현재 한 달에 일요일만 쉬고 세전 500 정도 번다"며 "주 52시간과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면 지금 버는 것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투잡을 뛰어야 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대기업 112곳을 상대로 주52시간 제도 시행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많은 72.3%(81곳)가 이 제도로 가장 애로를 많이 겪을 부서로 생산현장인 공장을 꼽았다. 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축소된 임금에 대한 노조의 보전 요구'(35.7%)를 들었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다른 임금 감소분 보전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신규 인력을 채용한 기업에 대해 일부 기존 인력 임금 감소분을 1인당 10만~40만 원씩 지원한다. 하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 중에서는 500인 이하 제조업 사업장과 특례 제외 21개 업종 사업장이 지원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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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정체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학과 교수는 "한 사람이 10시간 하는 것을 두 사람이 5시간씩 쪼개 하는 것은 부대비용 때문에 총 인건비가 높아진다"며 "기업은 자동화에 투자하거나 해외로 생산을 이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기업 근로자 대부분이 연장 근로, 휴일 근로, 야간 근로를 통해서 소득을 보전한다"며 "연장 근로가 안 된다면 중소기업 급여가 크게 줄게 되고 대기업과 임금 격차도 커질 수 있다"고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6개월 유예기간 동안 기업들은 혁신 역량 제고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한다"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 간의 성과공유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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