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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자동차 여담] 숫자로 보는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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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고집속 탄생한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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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윈트에서 356 'No. 1' 로드스터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우측부터)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에르빈 코멘다. 사진=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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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윈트에서 356 'No. 1' 로드스터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우측부터)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에르빈 코멘다. 사진=포르쉐 [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여러 글로벌 자동차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을 쓰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포르쉐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자동차 회사 포르쉐는 356부터 911, 944, 959 등 숫자로 차명을 짓는 것을 고집한다. 포르쉐는 숫자로 차명을 짓다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근에는 이를 탈피하고 카이엔이나 마칸, 박스터 등을 출시하고 있기는 하다. 도대체 포르쉐가 숫자로 계보를 이어온 이유는 뭘까. 각 모델의 특징과 상징적인 숫자들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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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356 프로토타입. 사진=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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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슈투트가르트 박물관에 전시된 '356' 프로토타입. 사진=포르쉐 356-002와 1

포르쉐 첫차인 356은 폭발적인 성능으로 자동차 경주대회를 휩쓸었던 모델이다. 포르쉐 역사의 출발이며 새로운 스포츠카의 장을 연 차다. 이러한 포르쉐 356시리즈를 ‘최초’로 구매한 사람은 여성이다. 1949년 초 스위스 여성 욜란다 츄디는 최초 포르쉐 시리즈인 차대 번호 356-002 356/2 모델 컨버터블을 샀다. 포르쉐 최초 프로토타입인 ‘356 No.1 로드스터‘ 역시 여성이 운전했다. 취리히의 여배우이자 아티스트인 엘리자베스 스필호퍼는 1951년 1월에서 3월까지 이 차를 운전했다. 이 차는 추리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도 등장하는 차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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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356c 쿠페. 사진=플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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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356 c' 쿠페. 사진=플리커스 356과 비틀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같은 그룹사인데 질긴 인연을 자랑한다. 이들의 관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통치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포르쉐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에 국민차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일화에서 시작했다. 히틀러가 제시한 국민차 조건은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탈 수 있고, 1ℓ 기름으로 10km를 달릴 수 있으며, 무게는 660kg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장도 잘 나지 않고 튼튼해야 하며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해서 ‘딱정벌레’ 차로 유명한 폭스바겐 비틀이 탄생했다.

356은 비틀의 설계와 부품을 활용해 만든 양산차다. 비틀의 1.1ℓ 수평대향 4기통 엔진과 서스펜션 등을 조합한 '356'은 최고출력 4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외모는 비틀을 납작하게 만든 모습이지만 비틀과는 차원이 다른 고성능 스포츠카로 인기를 얻었다. 1949년 3월 페리 포르쉐의 누이인 루이제 피에히는 제네바모터쇼에 무대를 준비해 356을 전 세계에 알렸다. 356은 시대에 흐름에 못 이겨 1965년 단종됐다. 출시 후 약 7만7000대가 팔렸으며 후속 모델인 911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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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에 성공한 포르쉐 901(현 911) 57번 모델. 사진=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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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에 성공한 포르쉐 '901(현 911) 57번'. 사진=포르쉐 911과 901

스포츠카의 교과서이자 포르쉐의 상징인 911은 1957년부터 페리 포르쉐가 구상해온 차다. 당시 작고 좁으며 고급스럽지 못한 356을 대체하기 위해 계발을 준비했다. 911은 개발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대 내놓으라 하는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여러 번 거절하면서 개발이 지지부진했고 결국 1964년 엔진도 완성하지 못한 채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같은 해 9월 양산에 들어간 911의 첫 이름은 901이다. 그런데 푸조에서 가운데 0이 들어가는 세 자릿수 이름은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면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반발했다. 푸조는 1920년대부터 201, 401, 601 가운데 0이 들어간 이름으로 차를 판매하고 있었다. 결국 포르쉐는 이름을 바꾸기로 했고 현재 911이란 이름으로 결정했다.

917/30 스파이더와 385

385는 포르쉐 역사상 가장 빠른 경주용 차인 ‘917/30 스파이더’가 세운 최고 시속 기록이다. 1973년 제작된 이 차는 1200마력 12기통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385km를 세웠다. 1970~1971년 르망 24시 2연패를 달성한 7대의 917/30 모델은 현재 포르쉐 슈투트가르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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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28' 1977년형. 사진=플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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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28' 1977년형. 사진=플리커스 928과 18

1977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포르쉐 928은 1995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생산된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다. 극강의 스포츠성을 추구하는 911과 달리 928은 고급스럽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는 그란투리스모 모델이다. 928은 편의성과 출력으로 굉장한 호평을 받아 1978년에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덕분에 포르쉐 928은 ‘올해의 자동차 영광을 얻은 최초의 스포츠카’라는 함께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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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레이싱카 '956'. 사진=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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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레이싱카 '956'. 사진=포르쉐 956과 8

포르쉐 경주용 차 956은 1982년에서 1984년까지 전 세계 스포츠카 대회에서 우승을 휩쓴 차다. 르망에서는 8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956은 당시 스포츠카 대회 규정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괴물들이 넘쳐난 그룹 C에서 완벽한 성능을 보여주면서 ‘완성형 그룹 C카’라는 평가를 받았다.

956은 살벌한 힘과 중량을 자랑하는 차로 유명하다. 956은 1977년 그룹5(하드탑 투어링 프로토타입, 실루엣 포뮬러)에서 우승한 포르쉐 936의 차대를 기반으로 935의 박서 6기통 엔진을 얹어 개발했다. 포르쉐 최초로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로 차체를 만들었으며, 무게는 그룹 C의 최소무게 규정인 800kg이다. 반면 635마력 터보엔진을 장착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살벌한 출력과 가벼운 무게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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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44' 1982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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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44' 1982년형. 사진=포르쉐 944와 51

포르쉐는 944를 내놓기 이전까지 폭스바겐과 기술 제휴로 제작된 914, 924 등을 팔았다. 차만 두고 보면 914와 924는 포르쉐답지 못한 차였지만 판매량이 준수했기 때문에 회사는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판매를 계속했다. 924 터보 버전도 개발했으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었다. 포르쉐는 924 터보 버전을 단종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차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포르쉐는 자사 모델 928의 V8 엔진을 반으로 잘라 직렬 4기통 알루미늄 엔진을 만들었다. 4기통 엔진은 연비도 좋고 다른 공장에서 양산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 엔진이다. 새로운 엔진의 최고출력은 163마력으로 최대토크는 무려 35.7kgㆍm의 힘을 냈다. 여기에 정숙성을 잡기 위해 ‘이중 엇회전식 균형축’을 추가, 6기통 엔진 수준으로 차의 진동을 억제한다.

결국 1982년 포르쉐는 최고 시속은 220km를 넘어서는 보급형 차 944를 만들어 냈다. 포르쉐는 이 차를 9000달러(약 1000만원)라는 저렴한 가격에 출시했다. 출시 이후 불티나게 팔린 944는 1983년 포르쉐의 전체 판매량 중 ‘51%’를 차지했다. 포르쉐는 944를 이어 959과 968, 희대 역작인 카레라 GT 등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영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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