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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서초동 25시] 조폭 잡는 강력부… 요즘은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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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수사권 경찰로… 해체 위기 '범죄와의 전쟁' 조범석 검사 등 영화 속 실제 모델들 단골 무대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1990년 5월 19일 오전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사우나 앞. 30대 남성이 수사관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남성은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탕(湯) 안에 있던 건장한 체격의 남성에게 겨눴다. "꼼짝 마." 얼어붙은 탕 속 남성은 저항하지 않고 수갑을 받았다. 체포된 사람은 당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었다. 그에게 권총을 들이댄 사람은 당시 38세의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 검사였다. 조 검사는 이 밖에도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 영도파 두목 천달남 등 수백 명의 조폭을 구속했다. 조폭들 사이에서 그는 '건국 이래 최고의 악질 검사'로 불렸고, 나중에 대검 강력부장이 됐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온 조범석 검사(배우 곽도원)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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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검사의 상징은 강력부 검사였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칼잡이'로 불렸던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도 강력부 출신이다. 그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 일하던 1996년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을 사기·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영화 '공공의 적2'의 주인공인 강철중(배우 설경구) 검사의 실제 모델도 강력부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김희준 전 광주지검 차장이다. 그는 1998년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로 일할 때 국내에 처음 들어왔던 마약류 '물뽕'의 유통 조직을 소탕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 수사 당시 박철언 전 의원 등을 구속해 '모래시계 검사'라고 불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 사건 수사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였다.

강력부는 대기업·정치인 등을 수사하는 특수통 검사들을 길러내는 양성소 역할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을 맡은 박영수 전 대검 중수부장,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지휘한 김홍일 전 대검 중수부장도 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이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나 통신 추적 등 특수 수사의 기본이 되는 핵심 수사 기법들은 강력부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고 했다. 큰 사고가 난 적도 있다.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던 조폭 출신이 구타를 당해 숨지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악명 높은' 강력 검사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따라 검찰은 조폭·마약 등 강력 사건은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 조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강력부 검사들은 경찰에서 기소해야 한다며 보내오는 사건만 다룰 수 있다. 검찰이 현재 추진 중인 '마약·조폭 전담청' 신설도 강력부 검사들에겐 우울한 소식이다. 이곳에선 검사가 아니라 검찰 수사관이 수사를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검찰 강력부가 간판을 내릴 처지가 된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강력부는 여전히 필요하다"며 "검사는 조폭과 유착될 가능성이 경찰보다 훨씬 작다"고 했다. 검찰은 2012년 '룸살롱 황제' 이경백 수사에서 이씨의 돈을 받거나 뒤를 봐준 경찰 20여명을 구속한 바 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부패·경제 및 선거 범죄 등 정밀한 법률 적용이 필요한 사건과 달리 강력 사건은 지속적인 현장 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수사를 맡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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