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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멜론 한개 1600만원·수박 한통 550만원… 日농업의 침체 탈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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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물·신농법 성공작 나오면 지역 사회 모두가 마케팅 참여 高價 특산품으로 키워 쇼핑·관광 등과 접목, 지역경제 일으켜

귤 한 박스에 100만엔(약 1000만원), 수박 한 통에 55만엔, 청포도 한 송이에 10만엔….

최근 한 달간 일본 각지 도매시장에서 쏟아진 '햇과일 경매' 최고기록들이다. 그중에서도 최고 화제는 지난달 26일 삿포로시 중앙도매시장에서 나왔다.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 특산 멜론이 2개들이 한 상자에 320만엔(약 3200만원)에 팔렸다.

멜론을 낙찰받은 유바리시 청과회사는 5일 동안 특산물센터에 전시한 뒤 지난 1일 무료 시식회를 열었다. 관광객들이 그 멜론을 구경하고 시식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청과회사 직원이 멜론 두 개를 64조각으로 잘라 관광객 앞에 내놨다.

대학생 마쓰모토 미쓰히로(松本光広·22)씨는 이 멜론을 맛보려고 일본 중부 사카이(堺)시에서 유바리까지 1500㎞를 달려와 시식회장 주차장에 렌터카를 세워놓고 밤을 보냈다. "껍질 근처까지 달콤하다. 인생에서 제일 비싼 멜론이다. 이제까지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다"는 그의 소감이 '한 개 160만엔(1600만원), 한 입에 5만엔(50만원)'이란 제목을 달고 신문·방송에 실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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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리만 축제 분위기가 아니다. 농수산물 수확 철이 돌아오면서 전국 곳곳에서 품목별로 '최고가'를 고쳐 썼다는 소식이 쏟아지는 중이다. 같은 날 돗토리(鳥取)현 돗토리시 어시장에선 자연산 굴 첫 경매가 열렸다. 껍데기 길이가 13㎝ 넘는 큼직한 굴이 '1㎏당 1800만엔(약 1억8000만원)'이라는 사상 최고가에 거래됐다.

올해 7월 가나자와시 도매시장에서 열릴 포도 첫 경매도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작년에 이 동네 포도가 세운 '한 송이에 111만엔'이란 기록이 깨지느냐가 관심거리다. 직경 3.1㎝짜리 포도 한 알에 3만7000엔(약 37만원)꼴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마케팅 행사라고 보지 말라"고 했다. 이런 작물을 키우고 띄운 과정 하나하나에 일본 농업의 힘과 꾀가 실려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농민들이 고령화, 장기 불황, 인구 감소와 싸우며 전력을 다해 뚫은 돌파구가 '최고급 농작물'이다. 신작물·신농법을 시험해 성공작이 나오면 곧바로 지역사회 전체가 마케팅에 참여한다. 지자체가 나서서 '특산품 이름 짓기 공모전'을 열고, 지역 기업들이 '첫 경매'에서 앞다퉈 고액을 불러 '얼마나 맛있길래 멜론 한 개에 160만엔이냐'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화제 몰이에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여행·쇼핑·관광 등 다양한 산업에 접목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결국 지역 전체가 다 같이 먹고살 수 있게 된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게 '미야자키 망고'다. 지난 4월 미야자키시 도매시장에서 열린 올해 첫 망고 경매에선 '태양의 달걀'이라는 이 지역 특산 망고가 2개들이 1상자에 40만엔에 팔렸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미야자키는 망고와 아무 인연 없었다. 망고를 키우는 사람은커녕 먹어본 사람도 드물었다. 1984년 이 지역 농협 직원이 신작물 아이디어를 찾아 오키나와에 출장 갔다가 망고를 가져와 농가 두 곳에 키워보라고 설득했다. 일조 시간이 오키나와 못지않다는 데 착안했다. 첫 7년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열대 수입 망고나 오키나와 망고와 겨루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누군가 우연히 땅에 떨어진 망고를 먹어본 뒤 "다 익어서 떨어진 게 훨씬 더 달다. 일찍 따지 말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농민들이 모기장처럼 생긴 얇은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망고 한 알 한 알을 감싼 뒤 가지에 동여맸다. 다 익은 망고가 땅에 떨어지는 대신 주머니 안에 톡 떨어지게 했다. 생산량·판매량이 다 같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역 농협이 공모전을 벌여 '태양의 달걀'이란 브랜드명을 정하고, "일반 망고보다 훨씬 달콤한 '완숙 망고'"라고 전국에 선전했다. 지금 미야자키현은 오키나와에 이어 일본 2위의 망고 생산지로 자리 잡았다.

아베 정권이 올해부터 펼치는 농업 정책의 핵심도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히트 작물을 적극 밀어주겠다는 데 있다. 일명 '공격하는 농업(攻めの農業)'이다. 농업의 핵심인 쌀만 해도 지금까지는 보호와 통제가 양축이었다. 정부가 외국 쌀이 못 들어오게 막고, 다른 한편으론 지역마다 쌀 생산량을 할당해 과다 생산을 막았다.

올 들어 일본 정부는 생산 통제를 그만뒀다. '각자 맛있는 품종을 원하는 대로 생산해 다른 지자체와 경쟁하라. 정부는 살아남은 품종을 밀어주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부가가치 농산물이 속속 나오며 일본 농수산물 수출은 2013년 5505억엔에서 2017년 8071억엔으로 껑충 뛰었다. 5년 연속 역대 최고 수출 기록을 갈아쓴 데 이어 내년엔 1조엔 찍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목표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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