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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Why] 앞으로 일주일… 주 52시간 시작되면, 할증에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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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던 수당 할증은 줄어들고, 택시할증은 더 내야할 수도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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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인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6개월의 계도 기간을 부여해줄 것을 지난 19일 고용노동부에 건의했다. 노동시간 축소에 따른 혼란을 줄일 수 있게 적응할 시간을 달라는 뜻이다. 경총은 ▲천재지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허용되는 '인가연장근로'를 공장 보수 작업이나 시운전 등으로 확대해달라 ▲일이 몰리는 기간엔 주 52시간 이상 일하되 일이 없을 때 그만큼 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현재는 2주~3개월 내)을 넓혀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20일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올 연말까지 처벌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최악의 고용 지표에도 변명만 하다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인의 연간 노동은 2069시간(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고, 회원국 평균보다 300시간쯤 더 일한다. "바쁘지요?"가 인사말이고 야근이 미덕처럼 보이는 과로사회였다. 근로시간 단축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7월부터 '저녁이 있는 삶'이 당장 가능해질까. 일정한 값에 얼마를 더하는 것을 '할증(割增)'이라 부른다. 노동계 요구와 달리 중복할증(휴일에 일하면 통상임금의 200%를 주는 것)은 없어진다. 한편 서울시와 택시업계는 근로자 처우 개선과 택시 수급난 해소를 위해 할증시간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받아야 할 할증은 줄어들고 내야 할 할증은 늘어나는 꼴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를 명실상부 저녁이 있는 삶으로 데려갈지, 아니면 뜻밖의 청구서를 내밀지 '할증의 두 얼굴'을 중심으로 전망한다.

휴일근로 중복할증 없어져

국회 환경노동위는 지난 2월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주일 기준으로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씩 총 40시간, 연장근로는 토·일요일을 포함해 1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휴일근로, 연장근로, 야간근로(오후 10시~오전 6시)를 하면 임금의 50%를 가산해 줘야 한다.

기존 근로기준법은 1주일이 며칠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고용부 행정해석에 따라 1주일은 7일이 아닌 5일(월~금요일)이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셈했다. 1주일(5일)에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토·일요일 각각 8시간)을 더해 최장 68시간으로 운영돼 왔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을 비롯해 연장근로와 휴일근로가 불가피한 업종도 많았다.

국회가 5년 논의 끝에 의결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선 1주일을 7일로 명문화했다. 토·일요일까지 법정근로시간 계산에 넣은 것이다. 평일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의 구분이 사라졌다. 국회는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의 비용 부담 때문이다. 근로자가 일요일에 10시간 일한다면 8시간까지는 휴일근로수당(150%)을, 나머지 2시간은 휴일연장근로수당(200%)을 준다.

퇴근 도장 찍고 '유령 야근'

IT 서비스 전문 대기업에서 일하는 A팀장은 퇴근 후 종종 회사 밖에서 야근한다. 아무 보상이 없는 이른바 '유령 야근'이다. 그는 "오후 6시 30분이면 사무실 불이 꺼지고 퇴근하지만 기록되는 근무시간이 줄었을 뿐 업무량은 그대로라서 집이나 카페에서 일하곤 한다"며 "처자식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일종의 숙제를 싸들고 다니는 셈"이라고 푸념했다.

중견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B팀장은 52시간 근무제를 예행연습 중이다. 오전 7시에 출근하는데 점심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로 30분 늘었다.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하면 하루 10시간 일하는 셈이다. 건축 현장은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만 닫는다. 그래서 이 회사는 주말에 일할 경우 금요일이나 월요일을 쉬게 해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도록 했다. 그는 "충원은 어렵고 임금을 올려줄 순 없기 때문에 생긴 방식"이라며 "현장이 바빠지면 고참들은 쉬는 날에도 일하러 나오지만 무료 봉사하는 셈"이라고 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로 받는 수당이 급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생산직 근로자는 타격이 더 심각하다.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 대기업의 노조지부장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잔업·특근 같은 시간외근로가 많아서 대부분 주당 68시간을 일했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로 평일과 주말에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임금도 20~40%가량 덜 받게 된다"고 말했다. 기본급 올려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노조나, 공장 돌리려고 근로자를 더 뽑은 회사나 울상이긴 마찬가지. 그는 "올해 임금 협상은 벌써부터 난항이 예상된다"고 했다.

택시요금 할증은 밤 10시부터?

서울시는 택시업계와 택시기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택시요금 조정과 처우 및 서비스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 택시요금은 4년 주기로 오르다 동결된 지 5년 됐다. 서울시가 제안한 요금 인상 전제조건(사납금 인상 유예, 승차 거부 적발 시 영업 정지 등)에 대해 택시업계가 난색을 보이면서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물가가 동반 상승 중인 가운데 택시 기본요금 인상(3900~4500원) 외에 할증시간 조정도 이번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다.

현재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인 할증시간(추가요금 20% 부과)을 오후 10시부터로 앞당기는 대신 추가요금을 10%로 인하하는 방안, 추가 요금은 20%로 고정한 채 오후 11시부터 할증을 적용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할증시간을 확대하면 심야에 택시 수급난을 덜 수 있겠지만 서민 물가에는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택시 수요가 가장 많은 밤 10시~새벽 2시와 현재 할증시간과는 두 시간 격차가 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담당자는 "현재 할증시간 조정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2013년에 할증시간을 밤 11시부터 오전 3시까지로 앞당기는 방안을 놓고 시민 설문조사를 했는데 찬성이 65%였다"고 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상 야간은 밤 10시부터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로 퇴근이 빨라진 상황에서 할증시간 조정에 대한 찬반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업종별로 유연하게 적용해야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방향성은 맞지만 시행 방식이 너무 경직돼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 활동은 위축되고 근로자는 임금이 깎여 불만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간 12조3000억원의 노동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며 가능한 영역이 있고 일괄 적용하기 어려운 업종이 있다"며 "노사 합의로 할 수 있는 부분까지 강제하고 형사 책임(사업주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도 져야 한다면 노사 양측에 불만이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종별로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용이 확대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는 현재로선 빗나갔다. 이정민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많이 했던 근로자라면 경제적 타격이 클 것"이라며 "지난해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되레 저소득층이 어려워진 것처럼, 장기적으로 노동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혼란과 충격이 예상된다"고 했다. 기업이 근무시간 부족분을 추가 고용이 아닌 자동화로 메우려 할 수도 있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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