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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불붙은 트럼프發 무역전쟁…EU·인도·터키도 대미 보복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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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이 지구촌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인도, 터키도 대미 보복관세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모양새다.

EU는 22일(현지 시각)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리바이스 청바지 등 미국의 대표 제조업체를 겨냥해 보복관세를 시작했다. 이들 업체가 미국 유력 정치인 지역구에 본사를 두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에 정치적 압박 가하겠다는 의도다. 인도와 터키도 ‘받은만큼 돌려주겠다’며 미국의 철강관세로 본 피해 만큼 대미 보복관세 규모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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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3월 8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철강·알루미늄 산업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블룸버그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도 철강관세의 역풍을 맞고 있다. 캔 음료수를 제작하는 기업은 알루미늄 원가 상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농업계는 수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세탁기 가격이 올해 17% 오르는 등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다.

◇ EU, 할리 데이비슨·리바이스 美 대표 브랜드 보복관세

EU가 지난 20일 예고했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가 22일 발효됐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내세워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EU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법규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트럼프가 물러서지 않자 결국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이다. 내달 1일로 예고했던 시행 날짜도 9일이나 앞당겼다.

관세 대상인 미국 상품의 규모는 28억유로(약 3조6000억원)로 집계됐다. 관세 품목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의도하고, 버번 위스키, 청바지, 오토바이 오렌지주스, 크랜베리, 땅콩버터, 침구, 립스틱 등으로 정해졌다. 미국을 대표하는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 데이비슨은 미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에서 생산된다. 버번 위스키는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의 지역구인 켄터키의 대표 상품이다. 리바이스는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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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22일(현지 시각) 할리 데이비슨 등 미국 대표 소비재에 대한 보복관세를 시행했다./ 할리 데이비슨


유르키 카타이넨 유럽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22일 “할리 데이비슨, 버번위스키, 땅콩버터 등의 제품을 선택한 것은 매우 강력한 상징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미국의 부당하고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 ‘받은만큼 돌려줄 것’ 인도·터키·중국·캐나다·멕시코 반격 시작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대상국인 터키와 인도도 피해를 본 만큼 미국에 맞불을 놓기로 결정했다. 앞서 멕시코를 필두로 캐나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상응하는 대응에 나설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니하트 제이베크지 터키 경제장관은 21일부터 석탄, 종이, 견과류, 담배, 쌀, 자동차, 기계장비 등 18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관세 조치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터키는 세계에서 8번째 규모의 대미 철강 수출국이다. 터키는 미국의 철강관세 조치에 따라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관세 부담금인 2억6700만달러(약 3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복조치를 취했다.

인도 재무부도 오는 8월 4일부터 미국에서 수입되는 병아리콩과 벵갈녹두의 관세를 60%로, 렌틸콩의 관세를 30%로 각각 인상하는 등 모두 29개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관세를 올린다고 밝혔다. 인도 역시 미국의 관세부과에 따른 피해액(2억4100만달러)과 비슷한 규모로 보복관세 규모를 정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취업 비자 취득 요건을 강화하는 등 인도 정보기술(IT) 인력을 상대로 장벽을 쌓으면서, 인도 정부는 오토바이 등으로 제재 품목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은 미국산 철강, 돈육, 와인, 과일, 견과류 등에 30억달러(약 3조3300억원)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또 미국의 우방국인 캐나다는 오는 7월 1일부터 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은 물론 일부 식품과 농산품 등 광범위한 상품을 대상으로 수십 억 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산 철강, 파이프, 포도, 사과, 치즈, 돼지고기 등에 대한 보복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 트럼프 “보복하면 실수하는 것” 갈등 부추겨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한 충격은 미국 내부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알루미늄 관세로 인해 캔 음료수를 제작하는 미국 업체들은 원가 상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콩을 재배하는 농가부터 청바지 업체까지 수출 타격을 우려하고 있고, 중국의 미국산 자동차 보복관세 시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에 생산설비를 둔 독일 기업 다임러는 올해 이익이 전망치에 못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소비자들도 관세 전면전에 따른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WP)은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산 세탁기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최근 3개월 사이 제품 가격이 17% 폭등했다며, 역사상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WP는 “미국에서 1년간 팔리는 1000만대의 세탁기의 가격 상승치를 모두 더하면, 미국에 일자리 1개가 늘어나기 위해 미국 소비자들이 수백에서 수천달러를 소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도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우려를 잇따라 표명하고 나섰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0일 “무역정책 변화 때문에 경기 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며 “처음으로 미 재계가 투자·고용을 연기하기로 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이런 상황이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은 가늠할 수 없다”며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치권도 백악관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이 대규모 관세가 미국 경제에 흠집을 낼 것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공화당 역시 11월 중간선거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국가와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 수출품에 공정한 시장 접근을 제공하길 원한다”며 “그들이 보복한다면 그들은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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