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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예멘 독신남은 받지 말라"···성차별로 번진 제주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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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조혼 등 악습 피해 한국 찾은 여성들 지난해 ‘할례’ 난민 인정 국내 첫 사례 난민법은 여전히 ‘젠더 박해’ 인정 안 해

난민법 시행 5주년을 앞두고 난민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젠더 박해’(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박해)를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난민법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에 따른 박해를 난민 인정 사유로 본다. 젠더 박해는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니다. 때문에 가족의 명예를 명분으로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 살인’, 정조를 명분으로 여성 성기를 심하게 훼손하는 여성 할례, 어린 여자아이를 성인 남성과 결혼시키는 조혼 및 매매혼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여성들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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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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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지원 비정부기구인 ‘피난처’ 관계자는 “명예 살인을 피해 한국에 왔지만 어떤 단계의 난민 지위도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며 “(난민보다 낮은 단계의 지위인)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인정받은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과 달리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 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여성들은 가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를 겪는다. 이 관계자는 “테러리스트와 달리, 가족들은 제재를 받지 않고 쉽게 피해여성이 도망친 곳을 찾아올 수 있다”며 “젠더 박해를 당한 여성이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는 1991년부터 협약 당사국에게 ‘성별로 인한 박해’를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시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독일 망명법은 ‘성별이 원인이 된 박해’를 박해의 인정 사유로 명문화했다. 2015년에만 1265명이 이 사유로 독일에서 난민 인정을 받았다. 스위스도 유엔난민기구의 권고에 따라 젠더 박해를 난민 사유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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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제주도에 상륙한 예맨인들의 난민 신청을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글이 34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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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2017년 12월 대법원이 할례를 피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이는 국내에서 할례를 난민 인정 요건으로 본 최초의 사례다. 하지만 할례 외 다른 유형의 젠더 박해에 대해서는 난민 사유를 인정한 예가 없다. 현행법 또한 여전히 젠더 박해를 난민 인정 사유로 보지 않는다.

한지영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은 “여성 난민은 난민캠프에서도 지속적인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젠더박해가 특수한 박해로 동떨어져 인정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공동체에서 살 수 없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돼야 한다”며 “제주도 난민 중에도 적은 수지만 여성과 아동이 포함돼 있고, 이들에 대한 처우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인데 찬반 논란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편 난민 문제가 남녀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과 관련, ‘독신 남성들은 받지 말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면서다. 일부 네티즌들은 SNS에서 독신인 외국인 남성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출입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예멘 출신 난민신청자 549명 중 남성은 504명(91%)으로, 이들 중 대다수가 2~30대 청년이다. 이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난민인권센터 등 인권 단체 202곳은 지난 20일 공동성명서 발표를 통해 “정부는 ‘난민은 테러범이고 범죄자’라는 난민혐오를 확산하는 세력에 침묵하고 동조하고 있다”며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난민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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