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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제주 정착 예멘 난민의 롤모델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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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신청자 가족 7명과 공동생활하는 제주도민 “난민은 받아들여야 할 현실…난민 대책 마련해야” 제주 예멘인 80여명 일자리 구하지 못해 생계 막막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우리 집 방이 커서요.”

갈 곳 없는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일가족 일곱 명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생활하고 있는 허훈일(가명·40대)씨. 종교와 문화, 국적이 다른 데다 적지 않은 숫자의 가족에게 방을 선뜻 내어준 이유를 묻자 “큰 방이 하나 있어서”라며 다소 생뚱맞은 답을 했다.

지난 21일 오후 들어선 허씨 집 현관은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연두색 슬리퍼, 회색 여성 단화, 붉은색 농구화 등 각양각색의 신발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대가족이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허씨는 지난 11일 지인으로부터 예멘인 J(40대)씨 가족이 숙박비가 없어 당장 숙소를 나가게 됐다는 사연을 듣자마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부터 이 집에선 J씨의 딸 다섯 명과 허씨의 두 아들, 그리고 두 부부 등 ‘대가족’ 열한 명의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J씨의 딱한 상황을 듣고 ‘우리 집에 큰 방이 하나 있으니까 여기 와서 살면 되겠다’고 단순히 생각했어요. 깊이 생각해 본 게 아니라서 이유를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네요. 그냥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런 그에게도 전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가족과 한 지붕 밑에 산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당연히 불편하죠. 특히 라마단 기간에는 J씨 가족들이 낮 동안은 금식하고 오후 8시부터 밥을 먹는데 식사가 늦으니 자정이 넘어도 아이들이 잠을 안 자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한동안 피곤한 상태로 출근하고 그랬어요. 아이를 돌보는 아내가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그에게 이런 불편함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를 돕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네 명이 살던 집에서 열한 명이 살게 되면 불편한 건 당연한 거예요. 우리 가족들에게도 ‘J씨 가족을 데려오면 이런저런 점이 불편할 거다. 그런데 누군가를 도울 땐 어쩔 수 없는 거다’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가족들도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최근 찬반 논란이 팽팽한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해 묻자 그는 ‘난민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지금이야말로 난민 대책을 제대로 만들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 500여명을 내쫓고 난민법을 폐지한다거나 하면 평소 ‘경제대국이다. 선진국이다’ 하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매장당하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난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제주도 내 난민신청자에 대한 숙박 지원 시스템이 없다보니 저처럼 민간에서 먼저 돕기 시작했다”며 “정부나 제주도정은 이번 기회에 난민에 대한 민간 지원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서 지원 체계를 만들어나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예멘 난민신청자 549명 중 귀국 및 타 지역으로 이동한 인원을 제외한 486명(19일 기준)이 도내 체류 중이다. 취업설명회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한 예멘인은 402명(18일 기준)으로 나머지 80여명은 생계비가 없어 머물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알음알음 이 소식을 접한 개인이나 몇몇 민간단체가 갈 곳 없는 예멘인들에게 숙소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에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난민·난민신청자의 숙박 지원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허씨는 ‘난민 혐오’ 등 난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수용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일방적인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난민신청자가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게 처음이니까 거부감이 들거나 반대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찬반 양측 모두 충분히 검증된 자료나 근거를 가지고 신중히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씨는 마지막으로 한지붕 밑에 살고 있는 일곱 명의 가족이 제주도에 정착하려는 예멘 난민의 ‘롤모델’이 되기를 바랐다.

“J씨 가족이 제주도에 잘 정착해서 좋은 선례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잘 사는 모습을 보이면 주민들이나 도민들도 자연스럽게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예멘인이나 난민들에게도 큰 힘이 될 거예요. 저는 그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고요.”

susi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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