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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길고양이 쉼터 이전 요구했다고 살해 협박 당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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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청 길고양이 쉼터 이전 논란 거세...인근 유기견센터로 통합 이전 확정...동물보호단체-이해관계자들, 고양이·개 등 둘러싼 양보없는 갈등 계속...전문가 "사회적 합의 통해 수용 가능한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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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청 별관 옥상 길고양이 어울쉼터. 사진제공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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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길고양이 쉼터를 이전하라고 요구했다고 자식을 왕따시켜 자살시키고 온 가족을 신상털기하겠다고 협박하는 게 말이 됩니까? 고양이는 그렇게 사랑하면서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공포를 느껴 피해를 보는 수많은 이웃들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냐?"

지난 20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 A씨가 한 말이다. 올해 초부터 강동구청 별관 옥상에서 운영 중인 길고양이 쉼터가 지나치게 많은 개체 수로 인해 냄새ㆍ털 등으로 피해가 심해지자 이전을 요구했다가 동물보호단체 회원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협박을 당했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SNS에는 '인간쓰레기' 등의 욕설은 물론, 한 누리꾼이 몇년 전 국회의원 아들 자살 사건을 거론하는 한편 주변 식구들까지 신상털기를 하겠다고 협박한 글이 올라와 있다.

이처럼 반려 동물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이 대화ㆍ타협을 통한 해결없이 갈수록 극단화되고 있다. 개고기 식용 논란, 길고양이 쉼터 등을 둘러 싸고 이해 관계자ㆍ동물보호론자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용 가능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정립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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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동대문구청의 길고양이 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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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청이 지난해 4월 동물 복지 차원에서 조성한 별관 옥상의 '길고양이 어울쉼터' 이전 논란은 최근 발생한 길고양이 관련 갈등의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동네 캣맘-주민간 사사로운 갈등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설치한 보호시설을 둘러 싼 공무원단체-동물보호단체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해결책 마련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과 캣맘 단체 '미우캣 길고양이보호협회'는 지난 19일 강동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전을 반대했다. 이들은 "임신한 사람, 피부병 등 온갖 핑계로 길고양이 쉼터를 없애려고 하고 있지만 이는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사회적 최약자인 길고양이들을 내쫓고 없애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강동구청 측은 이미 관리 인력 고용 등 예산 1억원을 확보해 인근 구립 유기견보호센터로의 통합ㆍ이전을 확정한 상태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치료나 새끼 등 추가 보호가 필요한 고양이만 일시 보호하는 시설로 만들어졌지만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 최대 20여마리가 66㎡ 남짓한 공간에 수용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컸다"며 "앞으로 1~2개월간 시설 공사를 거쳐 유기견보호소의 여유 공간으로 이전할 계획을 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애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강동구청 공무원노조도 직원들의 불만을 이유로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직원들의 휴게 공간을 빼앗겨 200여명이 생활하면서 고양이 털과 똥, 냄새 때문에 알러지와 림원병, 고양이 공포증에 시달려 왔다"고 호소했다.

양측의 의견이 좁혀질 기미는 없다. 캣맘들은 구청의 이전 계획에 부정적이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유기견센터로의 이전은 반대다. 건물이 개인소유라 계약기간이 불안정해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 안정적이고 시설이 제공되면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며 "해당 쉼터는 털 날림, 악취가 없이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다.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몇몇 사람들의 주장 때문에 이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퇴임하는 이해식 구청장과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공무원들도 여전히 강경하다. 옥상 쉼터 건물이 불법 건축물이라며 조속한 철거를 촉구 중이다. A씨는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이 구청장에게 '우리에게 표가 있다'며 압력을 행사하고 공무원들에겐 '세금을 내는 주민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반협박성 발언을 한다"며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이 조직세를 키우려고 그러는 것 같다. 온갖 모욕 협박 발언에 인내의 한계가 거의 다 됐다. 마지막 아량으로 참고 있는 중"이라고 호소했다.

개고기 식용 금지를 둘러 싼 논란도 여전하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올해 복날을 앞두고 매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식용 금지 법제화ㆍ개농장 폐쇄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반려동물 문화 확산으로 개 식용 금지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고, 잔인한 도살ㆍ학대, 음식물 쓰레기 사료, 뜬장 등 열악한 사육 환경 등으로 국민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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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한 외국인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보신탕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원복 대표는 "소수의 개농장들의 사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민들이 희생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올림픽을 치뤄도 해외에서 '개 먹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수출에서도 불이익을 겪는 데, 우리가 왜 그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냐"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이 대표는 "시대가 바뀌었다. 청와대나 국회에서 책임감 있게 식용 금지 등 입법 절차를 처리해 줘야 할 때다. 계속 고발을 해서 개농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국 1만7000여곳 개농장을 운영하는 '육견업'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들은 조속히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를 관리 대상에 포함시켜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ㆍ돼지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시설 지원을 통해 위생적 사육ㆍ도축ㆍ유통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주영봉 한국육견단체협의회장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줄었다지만 서울에만 400여개 업소가 남아 있고 2015년 조사 결과 전 국민의 37%가 여전히 먹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전히 개는 소ㆍ닭ㆍ돼지ㆍ오리에 이어 5대 축종"며 "동물보호단체들이 주장하는 '시대적 변화'는 과장ㆍ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동물보호단체 3곳이 100억원 이상의 후원회비를 거둬 사용하면서 서로 자기들의 영향력을 키워 돈벌이를 하기 위해 경쟁하듯 반대 운동을 한다"며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해서 간신히 먹고사는 육견 농가들이 대부분 농부인데다 힘없고 늙어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반박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 회장은 이어 "식용견과 애완견을 분리해서 축산물위생관리법에 포함시키고 위생ㆍ도축ㆍ사육 환경 개선에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눈치를 보는 시절은 지났다. 전통 문화에 대해 당당해질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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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육견농가들의 개고기 식용 합법화 촉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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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갈등의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극한 갈등으로 치닫기 전에 정부ㆍ국회ㆍ전문가 등이 나서서 한다는 지적이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자연으로부터 유리되고 1인 가구 등 고독 생활자가 늘면서 개나 고양이를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거나, 반대로 잔인하게 학대ㆍ도살하는 사람들도 있는 등 양극단화되고 있다"며 "정치인들이나 학자ㆍ전문가들이 사회적 논의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동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하루 속히 정리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특히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나서지 않거나 부화뇌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의 욕망이나 주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만큼 다양한 입장, 특히 조직되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않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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