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서준(왼쪽), 박민영 / 사진제공=tvN
하지만 박서준의 신들린 연기에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작지 않은 허점을 드러낸다. 가장 큰 문제는 서사를 지탱하는 구조가 비서에 대한 오래된 판타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일을 할 때에는 불편하지만 몸매를 드러내는 데에는 효과적인 김미소(박민영)의 의상은 차치하더라도, 상사의 넥타이까지 매만져준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여비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영준의 가정사에 관여하거나 그의 대리기사 노릇을 하는 것, 심지어 늦은 밤 자신을 찾아온 영준을 집으로 들여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이미 비서의 업무 영역을 넘어섰다. 미소는 유능한 비서지만, 그는 비서가 아니라 젊고 예쁜 유모처럼 보일 때가 더 잦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서준(왼쪽), 박민영 / 사진제공=방송화면 캡처
미소에 대한 영준의 ‘직진’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던 건 이들이 수직적 직능관계를 전제로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5회 방송에서 나타난 영준의 고백이 다행스럽게 느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쪽의, 그것도 권력을 가진 쪽의 일방적인 구애가 로맨스로 포장되는 일은 당분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다. 이들의 감정적 교류도 상사 대 부하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교감으로 변화하게 될 테다. 작품의 도덕적 결함이 일정 부분 해소된 것이다. 영준이 이성연(이태환)과 대화하고 있는 미소의 손을 낚아채 완력으로 그를 데려가는 모습은 여전히 구시대적이지만 말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원작 웹소설은 2013년 발간됐다. 그리고 지난 5년간 폭력과 로맨스 사이의 적정선에 대한 시청자의 기준은 더욱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 또한 필수적인 덕목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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