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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ESC] 신성해서? 더러워서? 돼지고기 안 먹는 이유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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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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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레위기’ 11장,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네발짐승’은 먹어도 된다는 신의 말씀. 돼지는 새김질을 하지 않으니 ‘부정한’ 짐승.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까요? 돼지는 어쩌다 ‘더럽다’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을까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합리적 설명을 시도합니다. 돼지는 잡식성. 먹을거리를 놓고 인간과 경쟁합니다. ‘고기 맛은 좋지만 사료와 (그늘이) 시원한 돼지우리를 만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 중동지역에서 금기가 되었대요. 인기 있는 이론이긴 한데, 돼지고기 말고 다른 금기들은 어떻게 설명할지요.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는 후각과 유전자를 거론합니다. ‘전 세계에서 거세 안 한 수퇘지의 오줌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중동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곳과 일치한다. 단순한 우연일까?’ <왜 맛있을까>에 나오는 이야기. 흥미롭지만 인종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죠.

작가 마르타 자라스카는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이유로 꼽아요. ‘중동의 돼지고기 금기는 그리스도교로부터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차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대요. ‘만일 새로운 종교를 시작한다면 인기 있는 육류를 금지함으로써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꼬집네요. 제가 보기에는 가장 이치에 맞는 주장 같아요. 물론 인기 없는 이론이죠. 사람들은 상식에 벗어난 설명을 재미있어 하니까요.

돼지를 먹지 말라는 까닭은 돼지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인간과 가깝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인간과 돼지가 생물학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은 자주 지적됩니다. ‘사람고기에서 돼지 맛이 난다는 생각은 확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지만 널리 퍼져 있다.’ 작가 톰 닐론은 <음식과 전쟁>에서 지적합니다. ‘돼지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고기와 맛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나도 들어봤어요. 확인할 길은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고요.

신화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돼지가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 이론을 반박하며 마빈 해리스는 돼지는 숭배하면서도 그 고기는 맛있게 먹는 뉴기니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아무튼 돼지를 거룩하게 여기는 문화도 있다는 얘기죠. 옛날 중국이 그랬대요. ‘집 가(家)’라는 한자는 집 안에 돼지가 들어있는 모습이죠. 요즘과는 달리 옛날의 ‘가’는 제법 규모 있는 경제 단위였어요. 돼지를 잡아 신께 제사를 지내는 일에서 ‘가’라는 한자가 나왔다고 하네요.

제사 때 쓸 돼지 ‘신저(神猪)’를 정성껏 기르는 풍습이 타이완에 남아 있대요. 그러나 120kg짜리 돼지를 800kg까지 찌운다니 ‘정성’이 지나칩니다. 얼마나 찌웠나 대회를 열어 상도 준대요. 끊이지 않는 동물 학대 논란. 더럽다는 말 대신 신성하다는 말을 들어도 돼지에게 좋은 일은 아닌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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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좋아하는 저도 돼지고기 먹기가 꺼림칙할 때가 있어요. 공장식 축산 이야기를 접할 때나 돼지 수만 마리의 ‘살처분’ 기사를 읽을 때 그래요. 이슬람교도 친구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돼지고기 식당에 데려간다는 사람들도 불편합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미안한 세상이라니, 어쩌면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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