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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ISD 오류 이유] "소송 가능성 0%" MB 오판이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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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기자]

2011년 한·미 FTA 국회 인준 과정에서 투자자-국가소송(ISD)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ISD 반대론자는 ISD가 국내 사법권과 정책을 흔들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B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ISD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입니다'라는 자료까지 내놓으며 ISD의 필요성을 옹호했다. 7년이 흐른 지금 MB정부의 ISD 옹호론은 모두 빗나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첫 단추 잘못 끼운 ISD의 처음과 끝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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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ISD를 향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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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ISD를 향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앞두고 ISD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ISD 반대론자는 한국 정부의 공공정책이 국제 중재기구의 판단으로 무력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법계에선 'ISD가 국내 사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이명박(MB)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2011년 11월 정부가 발표한 'ISD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입니다'라는 자료를 살펴보자. "정부 조치가 정당하고 미국 투자자에게 비차별적인 경우에는 ISD 피소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ISD 피소 가능성은 0%다. 일부 남미국가가 제소를 당한 것은 대부분 정당한 보상 없이 실시한 국유화 등 반시장적 조치 때문이다. 시장경제원칙을 따르고 안정적인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MB정부는 우리나라가 1967년 국제투자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가입한 이후 ISD에 피소된 사례가 전혀 없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은 불과 1년 만에 '공염불'이 됐다. 2012년 12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에 나섰기 때문이다.

ISD 피소에서 안전할 거라던 MB정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 정부는 2012년 이후 총 3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첫번째 소송은 익히 알고 있는 론스타 ISD 소송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틈타 한국에 진출한 론스타는 2012년 총 4조60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하지만 2003년 인수한 외환은행의 매각 과정을 빌미로 ISD 소송을 제기했다. 근거는 HSBC은행이 2008년 외환은행 인수에 나섰지만 정부의 승인이 미뤄져 계약이 불발돼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가 부과한 세금도 걸고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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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명박(MB) 정부는 ISD에 피소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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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론스타 ISD 소송에서 우려하는 건 '간접수용' 인정 가능성이다. 간접수용은 직접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입어도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원리다. 론스타는 국세청이 부과한 양도소득세를 한·벨기에 조세 조약을 위반한 간접수용이라고 주장했다. 론스타가 벨기에에 설립한 자회사(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기 때문에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BIT)'에 따라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MB가 ISD 소송 낮게 본 이유

론스타가 제기한 간접수용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국가의 공공정책이 ISD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우려는 최근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두고 외국인 투자자가 ISD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보편요금제로 이동통신사의 수익성 악화할 경우 손실을 본 외국인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우 민변 변호사는 "2011년 ISD 독소조항 논란이 있을 때도 '간접수용' 가능성을 두고 문제가 제기됐다"며 "일례로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도 ISD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접수용이 가능해진다면 정부 정책에 족쇄를 채우는 꼴"이라며 "다양한 복지정책, 경제민주화 정책 등을 시행할 때 외국계 투자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MB정부가 오판한 것은 또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과 중재판정이 내려지기까지 2~3년의 기간이 소요돼 무분별 하게 ISD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 정부는 2015년 5월과 9월 각각 아랍에미리트(UAE) 석유투자회사(IPIC)의 자회사인 하노칼과 이란 가전기업인 엔텍합의 대주주 다야니에 연이어 ISD 소송을 당했다. 최근엔 ISD 소송에 나서지 않을 거라 밝혔던 엘리엇도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ISD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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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명박(MB) 정부는 ISD에 피소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사진=뉴시스]

다행히 하노칼은 소송 제기 1년 만인 2016년 7월 ISD를 취하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에서 승소한 다야니는 달랐다.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나선 엔텍합은 인수대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에 인수대금 중 500억~600억원가량을 깎아 달라고 요구했다. 엔텍합은 채권단과 협의한 거래처 보장 조항을 명분으로 삼았다. 엔텍합은 인수 과정에서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해외 거래처와 최소 5년 간 거래를 유지하는 '안정장치'를 요구했고 채권단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일부 거래처가 '5년 거래 보장' 약정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생겼고 엔텍합은 이를 근거로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엔텍합의 가격 인하 요구가 계약 실패의 책임을 채권단에 돌리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분석했다. 인수 결렬의 이유가 대금 확보의 어려움이 아닌 계약변경에 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엔텍합의 전략은 성공했다. 인수 실패 6년 만에 ISD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계약보증금과 지연이자 등을 포함한 73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 변호사는 "중재판결문을 볼 수 없어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다야니는 계약변경을 매각 실패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에서 제기한 계약금 반환소송에서 패소하자 국내 재판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ISD 전략적으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계 자본은 소송에 나설 때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접근한다"며 "결국 한국 정부는 국내 재판 결과만 믿고 있다가 패소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간접수용' 빌미로 한 ISD 증가할 수도

정부의 오판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론스타 ISD 소송이다. 2012년 론스타 ISD 소송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금융위원장이었던 김석동 위원장은 "120% 승소를 자신한다"고 공언했다. 그는 "론스타가 사전에 치밀한 법적 검토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소송으로 가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재 론스타 ISD 소송의 결과를 낙관하는 사람은 없다. 정부의 ISD 관련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자본 시장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ISD 소송의 증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깜깜이 전략'을 버리고 정책적 판단의 책임을 져야 다음번 ISD 소송이 투명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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