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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IF] 바닷속 '光케이블', 지진계보다 2초 빨리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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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강진(强震)은 일단 발생하면 수 초 만에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 1초라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지진 발생을 예측하는 연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륙에 설치된 지진계로는 바다에서 시작되는 지진을 빠르게 감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과학자들이 최근 의외의 곳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통신용 광섬유 케이블이다. 광섬유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가느다란 유리 가닥을 꼬아 만든 섬유로, 전자신호를 빛으로 바꿔 대륙 간 통신·인터넷 연결에 사용한다.

조선비즈

/그래픽=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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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탈리아·몰타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1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해저 통신용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해 지진계만큼 정확하게 지진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저 케이블 주변에서 땅이 흔들리면 광섬유를 오가는 빛 신호의 파장이 미세하게 흔들리는데 이 차이를 감지해 지진 발생 위치와 지진 강도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전 세계 바다에 매장된 총 100만㎞의 통신용 광섬유 케이블을 지진 감지에 활용할 경우 도시에 큰 피해를 주는 지진해일(쓰나미)을 이전보다 빠르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광섬유를 통해 바닷속 진앙(震央) 바로 옆에서 지진파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1,2초 빨리 지진 발생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깔려 있는 광섬유 케이블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 부담도 거의 없다.

◇지진 발생하는 바다에서 감지

사이언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영국 국립물리연구소(NPL) 주세페 마라 연구원은 광섬유로 지진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아냈다. 마라 연구원은 2016년 10월 30일 원자시계 연구를 위해 영국 남부 레딩과 테딩턴을 연결하는 79㎞ 길이의 지하 광케이블을 점검하고 있었다. 작업 도중 케이블 양방향을 오가는 빛 신호가 평소와 달리 미세하게 차이가 났다. 같은 시각 테딩턴에서 1400㎞가량 떨어진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는 지진의 진동 탓에 케이블이 흔들려 빛 신호 이상이 감지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라 연구원은 "광섬유의 양방향을 오가는 빛의 파장은 항상 동일한데 지진 발생 시각에 미세하게 두 파장이 흔들렸다"고 밝혔다.

마라 연구원은 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먼바다에서도 광섬유로 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그는 지중해 지역 몰타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을 연결하는 길이 98㎞ 광케이블을 계속 관찰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인근 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3.4의 지진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광케이블 양쪽에서 레이저를 동시에 발사한 결과 빛의 도달 시간에 차이가 있었는데 이 시간차를 계산해 지진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지진은 통상 해안이나 내륙에 설치한 지진계로 감지한다. 지면이 흔들리면 지진계의 대형 스프링에 매달린 추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발전기에서처럼 추에 붙어있는 코일이 움직이면 전기가 발생한다. 전기량에 따라 지진의 강도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진의 90%가량은 바다와 연안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지진 감지계는 외부 소음이나 흔들림이 적은 내륙 지역에 있기 때문에 지진 감지 시간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웠다. 바다 깊숙한 곳에 매설된 광섬유 케이블은 이런 문제를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섬유로 원전·지하철 안전도 진단

최근 광섬유는 통신 이외의 용도로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물리학과 비온도 비온디 교수 연구팀은 2016년 9월 학교 캠퍼스 주변에 3마일(약 5㎞) 길이의 광섬유를 땅속에 설치하고 지진 감지 연구를 시작했다. 스탠퍼드대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일대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이른바 '불의 고리'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다. 비온디 교수는 광섬유를 통해 지난해 9월 발생한 규모 8.2 멕시코시티 지진을 포함해 800여 차례 지진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광섬유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도 감지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광섬유의 진동 감지 능력은 인프라 관리에도 활용될 수 있다. 광섬유가 지진으로 인한 진동뿐 아니라 인공 구조물이 기울어지거나 변형될 때 발생하는 진동도 감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광섬유는 원자력발전소와 댐, 지하철 등 다양한 사회 기반시설의 안전 진단에 활용되고 있다. 광섬유를 이용하면 반경 수십㎞에 이르는 시설물의 변형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광섬유를 이용해 시설물의 온도 변화, 기울기, 압력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해 국내 원전과 지하철의 안전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신길역과 여의도역을 잇는 터널에도 광섬유 센서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안전 여부를 살피고 있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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