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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줍고 또 줍지요” 도동항 ‘쓰레기 낚는 낚시꾼’ 이인식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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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독도·울릉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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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아침 울릉도 도동항 주차장. 빈 페트병 서너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걸어가면서도 차량 사이나 바다 쪽을 유심히 살핀다.

“청소하는 거지 뭐. 이런 걸 아무 데나 내던지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까.”

주차장 옆에서 낚시 대여 노점을 하는 이인식(84)씨다. 이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동항 청소부다. 낚싯대 빌려주고 수리하면서, 틈틈이 도동항 구석구석을 돌며 쓰레기 줍는 게 일이다. “저 양반은 낚시점 일보다 쓰레기 줍는 걸 좋아한다니까. 쓰레기 버리다 걸리면 국물도 없어요.” 이웃 더덕 노점상 아주머니의 말이다. “비닐봉지가 문제야. 이거 바람에 날아다니면 잡을 도리가 없어요.” 이씨가 노점 부스 옆에 세워뒀던 긴 뜰채를 가져와 보여준다. 바다에 빠진 비닐봉지 수거용 뜰채란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 삼아” 한다. 일터에서 하는 일 중 하나가 청소인 셈이다.

이씨는 서울에서 카메라 수리점을 하다 43년 전 울릉도에 들어왔다. “낚시가 좋아서” 눌러앉았고, 낚시를 하다 보니 낚싯대 수리·대여점도 하게 됐다고 한다. 많은 울릉도 주민들이 그러듯이, 이씨도 겨울엔 뭍(포항)으로 가 살고, 3월부터 11월까지만 도동항에서 지낸다.

‘대낚싯대 10시간 대여 5000원’이라고 적어 놨지만, 10시간을 넘겨도 되고, 다음날 가져와도 상관 않는다. (물론, 울릉도에 여행 와서 10시간 넘게 낚시하는 사람도 드물단다). 이씨가 자리에 없으면, 노점 부스 옆에 놔두고 가도 된다. 심지어 낚싯대를 실수로 망가뜨렸어도 “솔직하게 고백만 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낚싯대 고치는 게 내 일이니까…. 단, 안 망가뜨렸다고 거짓말하면 반드시 책임을 묻지.” 미끼(새우나 오징어 내장)는 한 통에 3000원을 받는데, 빈 통을 되가져오면 500원을 돌려준다. “다른 빈 통을 주워오거나 끊어진 낚싯줄을 거둬와도 500원을 더 돌려주지. 이렇게 해야 내 일터가 깨끗해져요. 바닷물이 깨끗해야 고기도 많이 살 거고.” 이씨야말로 일과 취미와 환경보호 활동을 일치시키며 사는, 자생적·자발적·공세적인 생활 환경운동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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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씨가 운영하는 낚시대 대여 노점.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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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도동리의 70~80대 낚시꾼 20여명이 회원인 불로낚시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우린 1년에 1~2회 상품 걸어 놓고 벵에돔 낚시만 해요. 크고, 손맛 좋고, 재밌으니까. 25㎝ 이하짜리는 무조건 풀어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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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흔히 도둑·공해·뱀이 없는 ‘3무의 섬’으로 불린다. 도동항의 ‘쓰레기 낚는 낚시꾼’ 이씨가 실천하고 또 바라듯이, 언젠가는 울릉도가 쓰레기도 찾아볼 수 없는 ‘4무의 섬’이 되면 참 좋겠다.

울릉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독도·울릉도

동해 한가운데 자리한, 보물단지 같은 대한민국 영토. 삼국시대부터 지켜 온,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신비로운 섬 무리임. 행정구역상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 차림에 ‘독도새우’가 선보이면서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독도에 대한 관심이 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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