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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고데기' 내려놓은 흑인 여성들… 브라질판 탈코르셋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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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사는 은행원 브루나 아파레시다(27)는 최근 마지막 남은 생머리를 모두 잘라냈다. 아프리카계 특유의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화학약품으로 머리를 펴온 그는 “생머리가 아닌 나 자신은 상상할 수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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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최근 아프리카계 브라질 여성들 사이에서 곱슬머리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인 중심의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선언이다. 브라질판 ‘탈코르셋’ 운동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용실에는 곧고 부드러운 머리를 만들려는 흑인 여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미용사들은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위에 포름알데히드 같은 화학약품을 부었고, 손님들은 유독가스를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입가를 헝겊으로 가렸다. 여성들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10살 무렵부터 머리를 펴주는 각종 화학약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브라질에서 검은색 또는 갈색 피부를 가진 이들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돼왔다. 2016년 기준 브라질 인구의 절반을 약간 넘는 이들은 전체 살인사건 피해자의 70%를 차지한다. 평균 연봉도 백인보다 50%가량 낮다. 2017년 구글이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브라질 여성 3명 중 1명이 머리카락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곱슬머리의 등장이 흑인들의 권리 신장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스스로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브라질인은 2012년 이후 4년간 15%가 늘었다. (브라질 국민들은 인구조사에서 자신의 피부색과 인종을 당국에 보고하게 돼있다.) 구글랩스는 최근 2년간 “아프로 헤어(아프리칸 헤어스타일)”의 검색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곱슬머리 전용 샴푸, 어두운 피부를 위한 색조화장품 등 흑인들을 위한 뷰티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파레시다는 “은행 지점에 곱슬머리를 가진 흑인은 나 하나였지만 이제는 6명으로 늘었다”며 “많은 친구들이 곱슬머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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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곱슬머리로의 회귀가 일종의 정체성 투쟁이라고 말한다. 영화감독 안드레사 마셸(26)은 “머리카락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라며 “곱슬머리는 나와 내 조상을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인스타그램에는 ‘#곱슬머리(CabeloCresp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곱슬머리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중 매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흑인 여성들이 늘어난 것도 곱슬머리 열풍을 주도하는 요인이다. 브라질 유명 배우 타이스 아라우주는 부유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생머리가 아닌 곱슬머리로 등장한 것이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대중 매체 속 미의 기준이 백인에 맞춰져있음을 비판하면서 “약간의 책임감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로 돌아간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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