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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스분석]미, 유엔인권이사회도 탈퇴…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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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란보다 이스라엘 대상 결의안 더 많아" 헤일리 대사 "위선적 기구"…가입 9년 만에 탈퇴 파리협정·이란핵합의 등 '다자주의' 질서에 반기

중앙일보

19일(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왼쪽)가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미국이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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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인권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국제협력기구인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난민의 날(20일)을 하루 앞두고 나온 이번 결정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분명히 하면서 국제사회의 호혜적 가치에서 벗어나는 또 한번의 일탈로 풀이된다.

19일(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이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끝없는 적의를 드러내왔다면서 “인권 침해국들(Human rights abusers)의 보호처이자 정치적 편견의 소굴에 불과한 곳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에 함께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국제기구가 우리와 동맹의 국익을 해친다면 이에 공모하지 않겠다”고 거들었다.

193개 유엔 회원국 투표를 통해 47개 이사국을 선출하는 UNHRC에서 이사국의 자발적 탈퇴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2006년 조지 부시 W 행정부 시절 UNHRC가 출범할 때부터 거부감을 보이며 이사국 선출에 나서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09년에야 합류했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 정책 등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해왔다. 특히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부임한 헤일리 대사는 UNHRC의 구조 개혁을 요구하며 툭하면 탈퇴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이날도 헤일리 대사는 “(이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해 이란·시리아·북한을 합친 숫자보다 더 많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면서 “그런 위원회는 인권 대의를 해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값을 못하는 기구" "위선적이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기구" "인권을 흉내만 내는" 등의 원색적 표현도 썼다. 폼페이오 장관도 "몇몇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국들이 이사회에 앉아 있다"면서 중국·쿠바·베네수엘라 등을 실명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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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제네바 사무국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 총회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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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유엔은 모여서 떠드는 사교클럽에 불과하다”고 유엔 위주의 다자주의를 폄하해 왔다.

그같은 다자주의가 국제사회의 '원 톱'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의 재량권을 제한해 국익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를 탈퇴한 데 이어 12월 유엔 분담금 축소 방침도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사회가 수년에 걸쳐 가까스로 합의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세계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도 잇따라 탈퇴했다. 올 들어 '이란 핵합의(JCPOA)'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에게 터무니없는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전쟁'도 선포했다. 최근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합의를 뒤집고 성명 철회를 일방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설립된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침해하는 외교정책들”(뉴욕타임스)이다.

헤일리 대사는 인권이사회가 미국이 요구한 개혁을 이행한다면 "기쁘게 재가입하겠다"면서 미국이 인권 가치 자체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트럼프 정부는 멕시코 국경의 불법 이민 자녀 격리 문제로 나라 안팎에서 인권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8일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아동에 학대를 가하면서 부모와 격리하려는 생각은 비양심적"이라며 이 같은 이민정책을 비판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UNHRC 탈퇴로 응수한 격이 됐다.

조정현 한국외대 로스쿨(국제법 전공) 교수는 “난민 이슈 등 국제사회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 정부가 리더십을 보여주긴커녕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결정을 계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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