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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광역시는 잠잠, 도는 시끌…버스대란 가능성 준공영제가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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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근로시간 단축 시행 앞두고 주 68시간 근무에 지역별 편차 커 시끌거리는 도 지역 버스 업계 왜? 서울, 부산, 대구 등 5대 광역시 잠잠 도는 현재 기사 부족한 상태에서 광역시와의 격차 메우기 힘들기 때문 각 지역, 버스 기사 양성 등 대책 추진 서울형 준공영제 모델로 갈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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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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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는 태평, 도(道)에서는 시끌.'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받아들이는 버스 업계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는 전혀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반면 경기도 등 일부 광역지자체에선 기사 부족에 따른 운행 단축 등 후유증을 염려하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의 도입 여부가 이같은 차이를 부른 것으로 분석된다.

20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 등 광역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유증과 갈등이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다. 이 곳들은 버스 준공영제가 일찌감치 자리잡아 주 68시간은 물론 주 52시간이 도입돼도 문제가 없다. 서울의 경우 2004년 전국 최초로 준공영제를 도입, 1일 2교대, 주 50시간 미만 근무가 정착돼 있다. 버스 1대 당 운전기사도 평균 2.4명에 이른다. 143개 노선에 2517대가 운행 중인 부산도 기사 5499명이 주 당 평균 54시간을 일하고 있다. 다음달 당장 주 52시간을 적용받는 대형 업체도 33개 회사 중 3개 뿐이다. 이들도 올 임금협상에서 이미 주 52시간 근무에 대비해 월 25에서 월 24일로 근무체제를 변경했다. 대구도 버스 기사들이 1일 9시간씩 주 5일 혹은 주 5일 근무 중인데다 당장 주 52시간을 적용해야 하는 300인 이상 업체가 없다. 광주·대전·인천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남과 전남·전북 등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경기와 경북·강원 같은 일부 도 단위 지자체가 문제다. 근로시간이 길고 근무 여건이 열악해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강화된 기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20일 근로시간 단축에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어느 정도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원의 경우 시내버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66시간 정도여서 당장은 문제없지만, 내년 7월 주 52시간 근무가 도입되면 문제가 생긴다. 장거리 운행이 많고, 300인 이상 대형 회사가 많은 시외버스 업계도 "근무시간을 준수하려면 춘천에서 부산 가는 버스에 비행기처럼 대체 운전자를 태워야 할 지경"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경기도다. 경기도 버스 기사들은 만성적인 기사 부족으로 현재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하루 최대 17시간을 운전하고 다음날 쉰다. 피로가 누적돼 지난해 경부고속도 추돌 참사와 같은 사고가 잦았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일부 준공영제가 도입됐지만 반대하는 시·군과 버스회사가 많아 절름발이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경기지역 버스 기사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8.5시간(추정)으로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68시간 근무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쉬는 날 연장근로를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탄력 근로제를 시행하더라도 교대 인력 확보 등을 위해 운전기사를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도내 버스 회사들은 일단 탄력 근무제를 도입해 주 68시간 기준을 맞추기로 했지만 주당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상당 폭의 인력 충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버스 회사 관계자는 "탄력 근무제를 하더라도 내년 7월 주 52시간이 도입되면 도내 219개 버스 업체에서 모두 5000~600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국적으론 8000~90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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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준공영제가 시행 중인 경기 남양주의 광역버스 [사진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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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족한 인원을 당장 채용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버스운송사업조합 소속 138개 업체는 지난달부터 운전기사 3132명에 대한 통합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 모집한 인원은 목표의 10분의 1인 300여 명에 불과하다. 도내 버스 기사들이 기왕이면 근무여건가 처우가 더 나은 서울이나 인천을 선호하는 탓이다. 경기 지역 버스기사들의 연봉은 서울보다 연 1000만원 가량 낮다. 1일 2교대제인 서울에 비해 격일제로 일해야 해 근무 환경도 열악하다.

버스 121대를 운행 중인 경기도 평택시의 협진여객운수는 버스 당 2.3명의 운전기사를 확보하려면 278명을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운전기사 수는 223명으로 50여 명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과 탄력 근로제를 앞두고 최근 교대 인력 30여 명을 겨우 뽑았다. 하지만 기존 버스 기사 30여 명이 사직서를 내는 바람에 인력 확충은 수포로 돌아갔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버스 기사들이 “월급과 퇴직금이 줄어든다”며 주로 서울·인천 버스회사로 이직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지역을 잘 아는 버스 운전 경력자를 뽑아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살 거나, 경력이 없어도 1종 대형 면허만 있으면 채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올해 들어 기사의 월급을 50만원 올렸지만, 자격요건을 갖춘 기사를 찾기 어려워 인력난 해소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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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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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일부 버스회사들이 배차 간격을 늘리거나 노선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역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농촌 등 교통취약지역은 버스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기 노선의 배차 간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대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강원도와 충남도 등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버스 기사 양성 사업에 착수했다. 강원도는 2억3000만원을 들여 이달부터 버스 기사 60명을 양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충남도는 다음 달부터 대형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운전자 양성과정을 운영, 각 버스업체에 운전기사를 공급할 계획으로 예산 5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서울형 준공영제를 도입하는 게 대안으로 여겨지지만 열악한 재정상황 탓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서울시가 준공영제를 유지하기 위해 한 해 버스회사에 지원하는 돈은 2200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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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버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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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관계자는 “경기지역에서 5000명의 버스 기사를 충원할 때 증가하는 인건비만 175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버스업체가 이를 부담하면서 기사를 충원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결국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국비 지원은 없다는 입장이어서 갑갑하다"고 말했다. 전주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국가 정책이기 때문에 시비만으로는 역부족이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준공영제에 국비를 지원해온 사례가 없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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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릉3동 도원교통 차고지.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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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진·김윤호·신진호·임명수·최모란·박진호·김준희·백경서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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