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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어제 뭐 봤어?] '미스 함무라비'가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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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수경 기자]
텐아시아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방송화면 캡처

“여전히 예쁘네요.”
“뭐가요?”
“알잖아요.(엉덩이)”
“그거 직장 내 성희롱입니다.”

흔한 직장 내 성희롱처럼 보이는 이 대화는 여성과 남성으로 희롱의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순간, 풍자로 바뀐다.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성희롱과 같은 세상의 ‘썩은 사과’를 드러내 비판하는 방식이다.

이 대화는 지난 19일 방송된 ‘미스 함무라비’에 나오는 한 장면을 발췌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엉덩이를 바라보는 주체는 이도연(이엘리야), 대상은 정보왕(류덕환)이다. 맥락상 자신의 엉덩이가 예쁘다는 말에 당황한 정보왕은 “그거 직장내 성희롱”이라고 받아쳤다. 이도연이 진지하게 사과하자 정보왕은 “나 듣기 좋았는데 무슨 성희롱이냐”며 정정했다. 이도연 또한 “저도 예쁘다고 한 것이 판사 엉덩이가 아니라 그냥 귀여운 남자 엉덩이였다. 그러니까 직장 내 성희롱 아니었다”고 마무리짓는다. 명료하고 통쾌한 풍자의 마무리다.

이날 방송에서 ‘미스 함무라비’는 또 다른 ‘썩은 사과’를 제시한다. 전관예우다. 박차오름 판사(고아라)는 “전관예우라는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무지한 사람들이 전관예우다 뭐다 하는 것”이라는 한 부장 판사에게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박 판사는 “과연 세상 사람들이 바보여서 전관예우가 있다고 믿는 걸까요?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를 제공해오는 거니까, 누군가는 그랬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부장 판사가 “지금 초임판사가 선배들 썩었다고 의심하는 거야”라고 하자 박 판사는 “사과 상자 안에 든 사과 중에 썩은 사과가 한 개라도 있으면 그 상자는 썩은 사과가 든 상자가 아닌가요? 독이 든 사과라면 어떨까요?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독사과를 먹으면 100퍼센트 죽는데요. 게다가 현직에 계실 때는 전관예우가 어딨냐고 흥분하시던 부장님들이 개업하시면 바로 ‘내가 재판장이랑 친하니까 나만 믿어’ 그러시는 건 아닌가요?”라고 일침을 가했다. 부장 판사는 반문을 못하고 “뭐가 어째? 시건방지게 어디서 그런 소리를”이라며 분노하기에 급급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어도 두 다리 건너 한 번쯤은 지인을 통해서 들어봤을 법한 ‘세상의 썩은 사과’ 도려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스 함무라비’에서는 ‘시건방진’ 발언과 장면들이 주제만 바뀐 채 매회 등장한다. 극 초반에서는 박 판사의 시장 이모들 가게에 놀러 온 임바른 판사(김명수), 정보왕 등이 시장 이모들이 건네는 다소 외설적인 외모 칭찬에 당황하는 장면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장면이 화제가 됐던 것은 국내 여성들이 쉽게 맞닥뜨리는 일상 속 성희롱을 남성과 여성만 바꾼 채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JTBC 드라마 공식 인스타그램에 ‘미스 함무라비’ 출연 배우들이 ‘전국의 꼰대들에게 고함’이라는 영상 편지로 꼰대 탈출 팁을 전했다. 극 중 민사 제44부 회식 에피소드를 다룬 ‘전국의 꼰대들에게 고함’ 1편 영상에서 배우 고아라는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냐’ 하지 마세요. ‘남’입니다. 존중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김명수는 “상사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 처음부터 찰떡 같이 말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류덕환은 “‘너 임마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때는 말이야!’ 이런 것 하지 마세요”라며 “‘자아’는요, 스스로 탐구하십시오”라고 지적했다.

‘시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은 박 판사에게 다른 판사는 “칼에는 날카로운 예검이 있고 날이 무딘 둔검이 있다. 세상에서 진짜 큰 일을 하는 것은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둔검”이라며 “예검은 쉽게 부러진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다. 박 판사는 분명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위로와 조언을 함께 건넸다.

직설 화법과 풍자를 풍성하게 활용하는 ‘미스 함무라비’도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둔검과 같은 드라마다. 예리한 시각과 재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드라마가 호평 받는 이유다. 지난 4일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미스 함무라비’는 2주 연속 화제성 1위를 차지했다. 20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9일 방송은 4.495%(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2018 러시아 월드겁 열기에도 굳건하게 시청률을 지켰다.

첫 회 시청률 3.7%로 시작해 최고 5.1%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미스 함무라비’는 매주 월, 화요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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