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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식당 밖에 떡하니… 이런 쓰레기를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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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규정 무시하고 대낮에도 내놔… 날 더워지자 골목 가득 악취] 불쾌감은 고스란히 시민 몫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른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니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악취의 장본인은 전봇대 아래 놓인 쓰레기봉투였다. 골목 전봇대 10여 개에는 50~100L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두어 개씩 놓여 있었다. 일부 봉투는 입구가 파헤쳐져 쓰레기가 흘러나왔다. 한 국밥집 앞의 음식 쓰레기 수거 용기는 뚜껑이 닫히지 않아 날파리가 들끓었다. 이웃 식당은 요리에 쓰고 남은 양(羊) 다리를 수거 용기 옆에 세워뒀다. 지나가던 20대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야만적이지 않으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비슷한 시각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골목은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봉투가 통행을 막고 있었다. 인근 가게 주인은 "몇 달간 비어 있던 매장을 임대했는데 주변 가게들이 여길 쓰레기장으로 알더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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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음식점 앞을 지나가던 한 여성이 길가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 수거 용기를 쳐다보고 있다. 밖으로 삐져나온 봉투가 군데군데 찢어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쓰레기는 저녁 시간대에만 배출이 가능하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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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대낮 도심의 골목을 쓰레기가 점령하고 있다. 골목 가게들이 배출 규정을 어기고 아무 때나 쓰레기봉투를 내놓아 악취를 풍기고 미관을 해친다. 현행법상 쓰레기봉투는 저녁 시간, 가게 바로 앞에 내놓아야 한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각 구가 조례로 정했다. 골목·주택지는 오후 6~7시, 대로변·관광지는 오후 10시부터 내놓을 수 있다. 이외 시간대에 쓰레기를 내놓거나 도로에 두면 10만~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도심 골목이 쓰레기 투기 단속의 사각지대라는 점이다. 단속을 맡은 각 구청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인파가 넘치는 명동과 광화문 일대를 단속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다"고 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쓰레기 투기 단속을 전담하는 계약직원 10명을 뽑았는데도 역부족"이라며 "결국 상인들의 양심에 달린 일"이라고 했다. 단속에 걸려도 영세한 상인의 사정을 고려해 벌금을 매기기보다 계도·안내에 그친다. 구청이 위탁한 청소용역업체는 쓰레기만 수거할 뿐 별다른 관리를 하지 못한다. 서울시는 "시에 감독 책임이 있다"면서도 "쓰레기 투기 관리는 각 구의 소관"이라며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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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음식점 앞에 종량제 쓰레기봉투 여러 개가 버려져 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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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 소홀한 사이 골목의 쓰레기 투기는 도를 넘고 있다. 일부 업주는 "가게 안에 쓰레기를 두면 냄새가 나서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업을 쉬는 날에 쓰레기를 밖에 내놓고 문을 잠그기도 한다. 자기 가게 앞이 아니라 10여m 떨어진 도로나 전봇대에 쓰레기를 쌓는 경우도 많다.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중국요리점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식당 하는 사람이 자기 가게 주변을 더럽힐 수야 없지 않으냐"며 멀리 떨어진 곳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대문구 창천동의 돈가스 가게 직원 강모(46)씨는 "쓰레기 냄새가 심해 가게 앞에 못 두고 주택가 담벼락에 둔다"고 했다.

시민들은 골목 쓰레기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직장인 최모(33)씨는 "쾌적한 도로를 걷다가도 쓰레기가 널브러진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가 같은 도시가 맞나 싶다"고 했다. 임신부 박모(29)씨는 "음식점 근처의 더러운 수거 용기를 보면 헛구역질이 나서 괴롭다"며 "골목에도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일부 상인은 "구청에서 쓰레기 수거를 더 자주 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관계자는 "주 3회 기준 쓰레기 처리 비용이 연간 180억원으로, 매일 수거하려면 60억원이 더 들어가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상인들 편하자고 시민들이 돈을 더 내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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