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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문으로 된 선조들 책, 직접 공부해 풀어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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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전공한 박기봉 대표 고어체와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신채호·이승만 등 저술 독파해 쉽고 정확한 현대어로 옮겨 출판

'자기가 내는 책을 직접 쓰는 출판사 사장' 박기봉(71) 비봉출판사 대표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20대 시절 옥중에서 저술한 '독립정신'을 현대어로 옮겼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적극 참여하고 언론인으로 활약하다 고종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된 청년 이승만은 한성감옥을 도서관 겸 집필실로 삼아 '청일전기(淸日戰紀)' '영한사전' 등을 썼다. 특히 5년 넘게 갇혀 있다가 출옥 직전 넉 달 동안 집중적으로 집필한 '독립정신'은 절대왕정에 길들어 있는 백성에게 자유·자주·독립·민주·공화·시장경제 등 근대 국가의 이념과 정치 제도를 계몽하는 불온 서적이었다.

조선일보

현대어로 직접 옮긴 우리 선조의 저술을 들고 있는 박기봉 비봉출판사 대표. 그는“30년 넘게 한문과 씨름하다 보니 독자적 해석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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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이승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쓴 '독립정신'은 조선 왕조 말기에 나온 최고의 경세서(經世書)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급하게 집필해 오탈자가 많고 한문 어휘·문장을 그대로 고어체(古語體)로 적어 순한글이면서도 현대 한국인이 읽기 어렵다. 한자어를 한글로 풀고 교정과 주석 작업을 거친 이번 책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도 밀접하게 관련 있는 '독립정신'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 되기를 바란다."

박 대표는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길은 독재자로 비난받는 이승만의 참모습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이승만 지음) '이승만의 대미 투쟁'(로버트 올리버 지음) '망명노인 이승만을 변호함'(김인서 지음)을 출판했다. 그는 "이승만의 저서 가운데 '독립정신'이 가장 중요하다"며 "당시 시대 상황과 국제 정세, 동양 고전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동 번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봉 대표는 앞서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을지문덕전(傳)'을 현대어로 옮겼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젊은 시절 군 복무 중 '조선상고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옛 사서(史書)를 원문 그대로 인용하는 신채호의 저술을 힘들게 독파한 그는 "한문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직접 실천에 옮겼다.

박 대표는 '난중일기' '선조실록' '명(明)실록' '징비록' 등에서 이순신 관련 자료를 뽑아 번역해서 연대기로 편집한 '충무공이순신전서'(전 4권)도 냈다. 2400쪽 넘는 방대한 책은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은사인 조순 교수가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이은상이 1960년 번역한 '이충무공전서'의 재번역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저술에서 충무공에 관한 부분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았고, 이순신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를 한데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문 실력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한문 공부를 해온 그는 1980년 출판사를 시작한 뒤 중국어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전서(篆書)까지 공부했다. '비봉한자학습법'을 썼고 '논어' '맹자' '삼국연의'(전 12권) '한자정해(漢字正解)'를 우리말로 번역한 그는 "우리 선조들이 한문으로 쓴 책을 올바로 이해해서 정확하게 현대어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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