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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구병모 소설 ‘네 이웃의 식탁’…주거와 육아 정책의 무용성 까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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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으로 기울어진 돌봄노동 ‘낡은 공동체 개념으로 해결’ 의심

저출산 정책 등 내놓기에 앞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해야 마땅

경향신문

구병모 작가(42)의 신작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은 ‘가족’ ‘이웃’ ‘공동체’ 등 온기를 품은 듯한 이 단어들의 허상을 까발린 소설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단어를 앞세운 정부 정책들의 ‘무용성’을 드러낸 작품이다.

소설은 정부의 출생률 제고 정책인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공동주택의 입주 조건은 아이 셋을 낳았거나 낳을 계획이 있는 부부. 소설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네 가족이 자연스럽게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말 그대로 ‘소소한 소동’을 밀착력 있게 그려냈다. 여기에 이웃 간에 서로 정을 나누고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담’은 없다.

구 작가는 1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인에게 과연 과거의 낡은 공동체 개념을 적용하는 게 가능할까 회의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앞서 구 작가는 지난해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란 단편을 발표했다. 작은 마을 공동체에 살고 있는 출산 준비 중인 여성이 전근대적 사고를 가진 마을의 어르신들로부터 크고 작은 간섭을 받다가 마을을 ‘탈출’하는 이야기다. 흔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과연 이 말이 해답일까, 의문을 가졌다. 공동체에 대한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만 문제가 아니다. 작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돌봄 노동 치우침’을 몸소 경험하며 현실적인 고민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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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네 가족은 공동육아를 하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여성들이 지는 무게가 더 크다. 구 작가는 “돌봄 노동은 가정 안에서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규모가 공동체로 커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과학소설(SF) 장르나 판타지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네 이웃의 식탁>은 지극히 현실적인 작품이다. 구 작가 스스로 “그동안 작품들과 달리 ‘비일상적인 요소’를 배제한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고 했다. 공동주거와 공동육아는 인간소외나 주거난, 육아 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거론돼왔으나, 작가는 이를 의심한다. 소설 속 네 가족은 서로의 삶의 경계를 파고들었다. 그로 인해 공동체에 균열이 생긴 후 각 가정도 해체의 과정을 겪는다. “인간은 본래 결함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본질인 “맞춤과 양보라는 그럴듯하고 유연한 사회적 합의”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공동체 속에 들어가니, 역설적이게도 각 가정에 숨겨져 있던 폭탄들도 터져나왔다.

소설 속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출산 장려 정책’의 비인간성을 상징한다. 정부는 ‘아이 3명’이라는 숫자만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은 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부가)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거나, 여성들이 배우자감을 하향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저출산 등은) 여성과 어린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인들 그 모두를 포함한 사람들, 재벌이나 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를 우습게 보고 간과했던 것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국가는 예전과 같은 ‘노예’를 갖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정책에 공감하지 않을 테니까요.”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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