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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덕수궁, 100여년 전의 제 모습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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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전 이전 기공식 ‘첫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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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꿈과 좌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덕수궁(경운궁)이 제 모습을 찾는다. 일제가 훼손하기 이전인 100여년 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할 당시로 복원되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꿈과 좌절 담긴 터로

복원 통해 역사 현장으로 거듭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변형·왜곡된 ‘선원전’ 권역이 ‘선원전’ ‘흥덕전’ ‘흥복전’ 등 50여 동의 건물이 들어서는 등 전면 복원된다. 또 사라진 서양식 근대건축물 ‘돈덕전’도 다시 세워지고, ‘광명문’은 제자리를 찾아 이전된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근대사 답사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정동 일대가 격동의 대한제국 당시 역사현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광명문을 제자리로 옮기는 기공식을 시작으로 덕수궁의 제 모습 찾기 복원사업을 본격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날 덕수궁에서는 광명문 이전 기공식이 열렸다.

■ 광명문, 올해 제자리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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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임진왜란 피란지에서 돌아온 조선 선조가 왕실 친·인척의 저택들을 궁궐로 삼으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저택들을 넓히고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아관파천) 고종은 ‘경운궁’으로 불리던 덕수궁에서 정사를 보면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이후 1910년까지 대한제국 황궁으로 사용됐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일제에 의해 퇴위당한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순종이 지었다.

고종 당시 덕수궁은 지금의 정동극장 뒤편의 ‘중명전’, 현 미국대사관저 옆 옛 경기여고 자리 등을 차지한 넓은 권역이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덕수궁은 크게 훼손된다. 특히 1920년대에는 덕수궁과 미 대사관저 사이에 길이 조성돼 덕수궁이 둘로 쪼개지고, 조선 임금들의 초상화(어진)를 봉안하던 선원전 영역(옛 경기여고 터), 지금의 대한제국역사관 인근에 있던 돈덕전 등이 사라진다.

덕수궁 함녕전 정문이던 광명문도 이때 지금의 자리(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옆)로 옮겨져 ‘창경궁 자격루’(국보 229호)와 ‘흥천사명 동종’(보물 1460호) 등의 유물을 보관하는 전시관으로 변했다. 문화재청은 덕수궁 복원사업으로 먼저 광명문을 올해 말까지 함녕전 앞 제자리로 옮기기로 했다. 광명문 내부에 보관된 창경궁 자격루와 신기전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 동종은 경복궁 내 임시 보관장소로 옮겨 보존처리할 예정이다. 보존처리를 마치면 자격루·신기전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흥천사명 동종은 학술조사를 거쳐 적정한 장소에 이전 설치된다.

■ 돈덕전과 선원전도 옛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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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훼손·변형·왜곡된

‘선원전’ 권역 옛 모습으로 부활

사라진 서양식 근대건축물

‘돈덕전’ 2021년까지 다시 세우고

‘광명문’은 제자리 찾아 이전


돈덕전은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하기 위한 서양식 연회장 용도로 지어졌다. 고종을 만나기 위한 대기 장소나 외국 사신 접견 장소, 국빈급 외국인 방문 시 숙소 등으로 활용됐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일제가 덕수궁을 공원화하기로 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올해 안에 돈덕전 복원공사에 착공, 2021년까지 복원을 완료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돈덕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끝내고 복원을 위한 설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복원된 돈덕전은 대한제국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관 등으로 활용된다.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 가장 먼저 신축한 핵심 건물이다. 1900년 10월 화재로 불타자 당시 미 공사관(현 미 대사관저) 북쪽 수어청 자리(옛 경기여고 터)로 옮겨 1901년 7월 복원했다. 하지만 고종 승하 후 다른 건물들이 들어섰다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해방 후에는 경기여고 자리였다가 주한 미대사관에 양도됐다. 선원전 터는 미국이 대사관 기숙사 건립을 시도하자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해 용산 미군기지 내 부지와 맞교환하면서 지금까지 보존돼왔다.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선원전 일대를 복원한다. 선원전과 빈전(왕·왕후의 시신을 임시로 모신 곳)인 흥덕전, 혼전(왕·왕후의 발인 후 임시로 신주를 모신 곳)이던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 건물 등 50여 동이 들어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 발굴조사를 위해 각종 건물과 시설물들을 철거할 계획”이라며 “철거하기 이전에 시민들이 역사적 장소를 둘러볼 수 있게 일정 기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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