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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文정부 치적 '통신비 인하'…무디스는 "신용 하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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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로밍·데이터 요금 인하를 정부 치적으로 포장하는 과기부

중앙일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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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논란이 일고 있는 보편요금제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핵심 정책이기도 한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에 음성 통화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만약 이 법안이 국회까지 통과한다면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보편요금제를 반드시 출시해야 한다. 이어 다른 통신사들도 보편요금제에 상응하는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함으로써 통신 요금이 전반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9일 보도자료로 보편요금제의 국무회의 의결 사실과 함께 지난 1년간 추진한 통신비 절감 정책 결과를 소개했다. A4 네 장에 걸친 이 문서에는 정부가 관철에 성공한 '선택약정 할인율 20%에서 25%로 상향'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 확대 시행'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정부가 통신비 인하 정책을 자평하는 자료에서 통신사들이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를 무릅쓰고 내놓은 신규 요금제와 로밍 요금 인하 사실도 포함했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가 2월 출시한 데이터 제공량과 속도 제한이 없는 무제한 요금제(월 8만8000원)도, KT가 지난달 월 3만3000원에 음성 통화 무제한,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유사 보편요금제를 내놓은 것도 통신사들의 결정이지 정부의 결정으로 나온 상품이 아니다. 최근 통신사들은 로밍 데이터ㆍ통화 요금도 경쟁적으로 70~90%씩 인하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신비를 내리고 소비자 친화적인 요금제 상품을 내놓게 된 데는 현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 기조도 분명히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신사들의 변화 일체를 정부 정책의 치적에 모조리 포함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통신사들이 지금처럼 자진해서 요금을 낮추고 소비자 혜택을 늘리게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요금제 출시를 법안으로까지 강제하는지도 설득력이 없다. 보편요금제는 통신비 정책을 협의하는 민관 논의기구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도 이해 관계자들 간에 의견 합치를 보지 못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난 사안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통신사들이 전액 부담한다. 취약계층 요금 감면에 통신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연간 9000억원 수준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왕서방이 먹는다는 속담을 연상케 한다.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 통신비에만 연간 2조원씩 예산을 편성한다.

외국에서 보는 국내 통신 시장 전망은 어둡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이 이동통신 시장(매출) 축소와 신용지표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SK텔레콤과 KT가 올해만 3~4%의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경쟁이 치열한 통신사들이 마케팅 비용도 줄이지 못하면 결국 통신사업자들의 신용지표만 안 좋아지리라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의 근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통신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통신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면 된다. 지금처럼 통신사들이 자진해서 각종 요금제와 혜택을 내놓는 분위기만 조성하자는 것이다. '통신시장=정부의 통신비 개입'로만 바라보는 정부의 근시안적 접근이 아쉽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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