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엄마 냄새는 최상의 안전지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기선]
베이비뉴스

영아는 엄마냄새를 맡으면서 안전감을 느낀다. ⓒ베이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아는 엄마냄새를 맡으면서 안전감을 느낀다. ⓒ베이비뉴스Q. 한 살 아기를 둔 워킹맘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너무 지쳐서 아무 것도 못하겠는데, 아이는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저한테서 떨어지질 않으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짜증스럽습니다. 아기한테 짜증내기보다는 '할머니댁으로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A. 필자가 부모교육에서 받은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워킹맘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님이 그런 고민을 하신다는 것은 현재 육아가 많이 힘드신 모양입니다. 엄마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할머니댁에 보내겠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현재 힘든 상황이 정말 육아인지, 다른 요인인지 살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은 이렇게 답변을 했다. 그러자 워킹맘은 대뜸 눈물을 흘렸다. "힘든 상황에 아기가 귀찮아진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죄스럽고 아기에게 미안하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고단한 많은 워킹맘들이 겪는 고민일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한 가지, 즉 육아나 바깥일만 잘 하고 싶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예전에는 여성들에게 수퍼우먼을 기대했다. 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그야말로 똑 소리 나는 여성에게 박수를 치곤했다.

그러나 그 수퍼우먼은 힘들다고 표현도 못하고 병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갈등에서 누군가에게 대리육아를 맡기고 바깥일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린이집은 주간에만 양육을 하므로 밤시간의 육아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진다. 주변에서 할머니나 이모, 고모 등의 친지들을 대리육아자로 선정한다. 그들이 초보엄마보다 육아는 잘해줄 수 있겠지만, 그 생각은 어른, 바로 엄마의 생각일 뿐이다. 심지어 '나보다 더 잘 키워주시니까, 걱정이 안돼서 보고 싶지도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엄마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엄마가 없는 낯선 곳으로 영아(두 돌까지)를 보내는 일은 말리고 싶다. 엄마는 할머니나 이모가 영아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람이므로 아기가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영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영아는 후각이 매우 발달하여 성인보다 냄새에 훨씬 예민하다. 영아는 엄마냄새를 맡으면서 안전감을 느낀다. 엄마냄새란 태내에서부터 익숙한 엄마의 양수냄새와 젖냄새이다. 그 냄새로 영아는 엄마가 가까이에 있음을 지각하고 편안하게 놀이를 한다. 안전감이란 자기가 부르면 엄마는 언제든지 달려와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믿음을 말한다. 그 엄마냄새없이 낮시간 내내 엄마를 기다렸는데, 밤에는 아예 엄마냄새가 없는 곳으로 보내다니, '으악!’ 영아에게 그 때부터의 밤은 공포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미 아기 시절을 오랜 전에 지났기 때문에, 아기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미지의 세계에 뚝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밖에 없다. 사지(四肢)를 움직여 이동할 수도 없고, 옷도 입지 않았다. 벌거벗은 몸에는 서늘함이 느껴지고, 소리를 내서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소리치지만, 밖의 사람에게는 우는 소리로만 들린다. 답답함에 직접 움직이고 싶지만, 걸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난다. '뚜벅, 뚜벅, 뚜벅’ 발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뭐지’라는 의아함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드디어 그 발소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얼굴이 보이고, 그 얼굴은 나를 보고 따뜻하게 웃는다. "아유, 우리 아가, 엄마 불렀어? 배고팠쪄요"라면서 나를 두 손으로 들어 안으면서 뽀뽀를 한다. 나는 살짝 두려운 생각에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자 "아유, 우리 아가 쌌구나. 기저귀를 갈아야겠네"라고 하면서 기저귀를 갈아준다. 뽀송뽀송한 새 기저귀에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곧이어 "우리 아가, 배고프겠네" 하더니 입에 뭔가를 물려준다. '아, 이 냄새야’ 그 익숙한 엄마냄새에 편안하게 젖을 빤다. 젖줄기가 목으로 넘어가고, '아, 맛있어’ 나는 젖을 먹고 잠이 든다. 다시 눈을 뜨니 그 엄마냄새를 가진 얼굴이 여전히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아유, 우리 아기, 깼어요?" 반갑게 나의 손을 만지면서 뽀뽀한다. 나는 "히히" 웃으며 답례한다. '아, 이 냄새가 참 좋아.’

이런 상황을 최소한 1년, 조금 길게는 3년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때, 아기는 엄마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다. 이 때, 엄마에게서 느끼는 안전감이 사람에 대한 대표 인상으로 형성되어, 타인에게도 엄마와 유사한 안전감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하게 된다. 즉, 초기의 애착이 대인관계의 표상으로 발전된다는 의미이다.

엄마가 없는, 엄마냄새가 없는 대리양육은 아기에게 안전감을 주지 못한다. 외현적인 양육은 할 수 있겠지만, 엄마냄새가 없는 환경에서 아기는 내심 불안하다. 아직 언어가 미발달된 영아의 불안을 어른들은 알지 못한다. 엄마냄새를 가진 사람이 아기랑 놀아주고 뽀뽀해주고, 밤에는 꼭 안고 자는 것이 최상의 안전감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칼럼니스트 이기선은 동덕여대에서 아동학(학석박사)을 공부하고, 메가원격평생교육원 아동학과 교수, 동덕여대와 서울한영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학교 밖에서는 부모교육전문가로, 함께하는아버지들의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자녀와 싸우지 마라」, 「꼬마영웅 레니」, 저서로는 「봄의 요정 보미」 등이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저작권자 Copyright ⓒ No.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