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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운동·공부해요" "좋은엄마 됐죠"…52시간이 바꿔놓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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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주 52시간 시대]퇴근 시간 지나면 PC 전원 꺼지는 셧다운제, '칼퇴근' 문화 확산…각종 취미활동·자기계발 등 활발, 가정생활 균형도 순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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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홈쇼핑 직원들이 퇴근 후 사내 자기계발 프로그램인 '플라워 클래스'에 참여, 꽃꽂이 체험을 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제공=GS홈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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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 홍보팀 임모 부장은 최근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회사가 이달부터 전 직원의 컴퓨터 온·오프 시간을 오전 8시20분~오후 5시40분으로 일괄 조정하는 'PC 셧다운제'를 시행하면서 1시간30분 이상의 아침 시간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도권 외곽에 거주하는 워킹맘 임 부장이 서울 종각역 인근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다소 이른 오전 6시40분. 교통 혼잡을 피해 일반 직장인들보다 일찍 나온다. 지난달까지는 조간 신문을 읽고 회사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업무를 했지만 지금은 PC가 켜지지 않아 이 같은 작업이 불가능하다.

임 부장은 "아예 출근 시간대를 늦춰볼까도 고민했지만 회사까지 이동시간이 2배 이상 늘어 포기했다"며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남는 아침 시간에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년째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시점에 시작하게 됐다"며 "이달 들어 피트니스센터나 외국어 학원에 등록한 동료들도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주 52시간 근로 시대가 열리면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것은 옛말. 퇴근을 독려하는 사내방송은 기본이고, 공식 업무시간이 끝나면 PC 전원이 강제로 꺼지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칼퇴근'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재계 한 임원은 "52시간 근로제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 만큼이나 국내 노동 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월화수목금금금이 다반사였던 주말 출근이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된 것처럼 이젠 야근 풍경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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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 임직원들이 직원 전용 피트니스센터인 '신세계 S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신세계그룹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직장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나섰다. 운동은 물론 각종 취미활동을 즐기거나 외국어 학습·대학원 진학 등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과 가정 생활의 불균형으로 발생했던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있다.

롯데그룹 김모 대리는 이달 초 외국어 학원에 재등록했다. 지난해 6개월치 수강권을 끊었다가 들쭉날쭉한 퇴근 시간 때문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일본어 심화과정이다. 김 대리는 "정시에 퇴근하면 눈치를 주던 임원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지주사는 물론 주요 계열사가 오후 6시30분에 컴퓨터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는 PC오프제를 시행하면서 그룹 전체에 칼퇴근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CJ그룹 김모 부장도 오는 9월 대학원에 진학한다. 하루 8시간 근무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 덕분에 수년간 망설였던 학업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됐다. 김 부장은 "컴퓨터가 꺼지니 사무실에 남아 있을 이유도 사라졌다"며 "동료들 상당수가 운동, 악기, 요리 등 취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GS홈쇼핑 직원들 사이에선 요즘 사내 자기계발 모임인 '뭉클'(뭉치면 클래스가 열린다)이 이슈다. 직원 5명 이상이 모이면 주제를 정해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데 제반 비용을 회사가 내주는 방식이다. 현재 꽃꽂이부터 레고, 팟캐스트, 영상편집, 미술 등 18개 강좌가 운영 중인데 참가하는 직원 수가 100여명에 달한다. 영상편집을 배우고 있는 황모 차장은 "처음엔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나 관리해보려고 시작했는데 편집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며 "유튜브 등을 통해 개인 콘텐츠의 파급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영상 기획부터 편집까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 초 국내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신세계그룹의 경우 임직원 전용 피트니스센터의 월평균 이용자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70% 증가했다. 또 신세계백화점 본사와 가까운 강남점 문화센터 요가·그림·요리 등 강좌에는 일찍 퇴근한 직원들이 몰리면서 매달 신세계 임직원 수강생이 15~20% 늘고 있다.

일과 가정 생활의 균형도 이뤄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박모 과장은 오후 5시에 퇴근, 직접 딸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집에선 딸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근무시간이 줄고, 정시 퇴근 문화가 정착되면서 달라진 일상이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무실에서 30분~1시간씩 더 앉아 있던 때와 비교하면 귀가시간이 2시간 이상 빨라졌다. 박 과장은 "작년까지만해도 친정어머니 도움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며 "친구들처럼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 손잡고 집에 가고 싶다던 딸의 소원을 요즘 매일 들어주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송지유 기자 c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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