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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감옥살이 된 한옥살이, 관광 시간·인원 제한이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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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명 찾는 서울 북촌 한옥마을 일부 주민 ‘관광객 공포증’ 호소 시, 대책 내놨지만 “효과 글쎄 … ” “상권 죽는다” vs “사생활 침해” 관광객 제한 두고 주민 설왕설래

중앙일보

지난 12일 서울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길은 이곳을 찾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관광객들 옆 벽면에는 주민들이 ‘과잉 관광’의 고통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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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주부 임지은(30)씨는 거실에 있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그는 얼마 전 이른 아침에 잠옷을 입은 채 창밖을 내다보다 깜짝 놀랐다. 남녀 외국인 관광객 두 명이 임씨 집 맞은편의 계단에 올라 서 있었다. 임씨의 집 거실 안이 들여다보이는 위치였다. 두 관광객은 임씨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임씨는 “이뿐이 아니다. 잠시라도 대문을 열어 놓으면 집 안에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가회·삼청동)에는 하루 평균 1만 여 명(외국인 약 70%)의 관광객이 찾는다. 주거용 한옥 250여 채가 모인 ‘가회동 골목길’(북촌로 11길) 주민들은 ‘관광객 공포증’를 호소한다. 지난 12일 오후 북촌로 11길의 골목길(총 약 100m 길이)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관광객의 큰 웃음소리가 귀를 때리기도 했다. 한옥 대문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도 관광객은 꾸준히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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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가회동 주민들이 ’관광객 때문에 못 살겠다“며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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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 주민의 불만은 상당하다. 일부 주민은 지난 4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거리 집회를 연다. 마을 벽면 곳곳에는 ‘북촌 한옥마을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북촌 한옥마을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안’을 내놨다. 주거 한옥이 밀집한 북촌로 11길 100m 일대가 대상이다. 관광 시간과 인원 제한이 핵심이다. 관광 허용시간을 주중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한다. 하지만 ‘허용’되지 않는 시간대의 관광을 강제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는 없다. 주민들로 이뤄진 ‘마을 지킴이’가 관광 자제를 안내할 뿐이다. 마을 출입구 3곳에 안내원을 배치해 관광객 수도 제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역시 안내 차원일 뿐 관광객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서울시는 오는 22일 북촌 한옥마을 주민이 참여한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 이르면 다음 달부터 이런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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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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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북촌로 11길 주민 60여 명으로 구성된 ‘북촌 한옥마을 운영회’ 관계자는 “지정 시간이나 적정 인원을 벗어난 관광을 막을 제도가 없다면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 입장료를 받아 관광객 수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촌 한옥마을의 주민 수는 2014년 8700명에서 2017년 7909명으로 줄었다. 김재용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자율적인 관광 시간 지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관광객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등은 북촌마을만이 아니다. 한 해 관광객 1000만 명이 넘는 전주 한옥마을도 관광객으로 인한 주민 사생활 피해가 상당하다. 제주도는 관광객이 버리는 일회용품 등의 쓰레기가 골칫거리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해안에서 수거한 쓰레기양은 2012년 9600t에서 지난해 1만4000t으로 30% 넘게 늘었다.

관광객을 반기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관광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북촌 일대 상권이 다 죽는다. 일부의 문제가 부각되어서 그렇지 대다수의 관광객은 에티켓을 잘 지킨다”고 말했다. 북촌마을서 만난 관광객 박소영(30)씨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을 보니 관광하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치가 보인다”면서 “서울시와 주민이 잘 협의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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