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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김기춘 독대, 강제 사표...역사교과서 국정화 막으려 했던 공무원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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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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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지난 8일 교육부가 전·현직 공직자와 민간인 17명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 일단락됐다.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육부 공무원들은 단지 ‘청와대 지시’라는 이유로 위법·부당 행위를 기획하고 실천했다”고 했다.

흔히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비아냥거리지만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반대했던 공직자들도 적지 않았다.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직책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시’에 정면으로 부딪친 사람들을 15일~16일 경향신문이 만나 인터뷰했다. 박백범 전 교육부 기획조정실장, 김신호 전 교육부 차관, 전우홍 경상북도교육청 부교육감은 국정화 지시에 반발했다가 인사조치를 당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의 말을 통해 당시 교육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여다봤다.

■ “강제로 쓴 사표, 법적 판단 받아보고 싶다”

2016년 6월, 박백범 당시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인천국제공항 건물 밖 벤치에 서류 한 장을 올려놓고 앉았다.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하고자 하오니 허락해주시기를.’ 프랑스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이었다.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교육부 직원은 “지난번 쓰신 것은 너무 오래됐으니 다시 써 달라”고 했다. 일행을 잠시 떼어놓고 밖으로 나와 서명을 했다. 그는 “이미 상부의 지시로 사표를 여러번 낸 상태였다”고 했다. 이날 쓴 ‘마지막 사표’가 수리돼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냈다. 교육부 ‘3인자’인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그가 부교육감 자리에서마저 밀려나자 뒷말이 무성했다. 그 자신은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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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뉴라이트 사관을 담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그해 교육부 국정감사는 ‘교과서 국감’이나 마찬가지였다.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며 추궁하는 야당 앞에서 서남수 당시 장관은 애매한 답변만 했다. 박 전 실장은 ‘감’을 잡았다. “청와대의 뜻은 정해졌고, 여론을 살피고 있음을 느꼈다.” 그해 겨울 간부회의가 끝난 뒤 그는 일부러 남아 서 전 장관을 붙잡고 말했다. “국정화로 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역사에 죄 짓는 일입니다.” 장관은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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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그는 대학지원실장에서 기획조정실장이 됐다. 차관 승진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즈음 교육부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검토할 ‘역사교육지원팀’이 생겼다. 서 전 장관은 이 팀을 박 전 실장에게 맡겼다. 박 전 실장은 국정화가 아닌 ‘검정 강화’에 무게를 둔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내면서 “시간끌기 작전을 펼쳤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석 달 뒤 서 장관은 물러났다. 박 전 실장은 장관 퇴임 전날 찾아가 “역사교육지원팀을 원래 직제상 있어야 할 곳(초중등교육 담당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박 전 실장은 “신념에도 어긋나는데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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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달 뒤 그는 서울시교육청으로 인사조치됐다. ‘수능 세계지리 문제 오류’ 책임을 지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부교육감으로 1년3개월가량 일하다가 사표를 요구받았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끝내야 하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를 수십차례 반복했다.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가족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그가 등떼밀려 퇴직한 날 아내는 집 안에 플래카드를 걸었다. “아빠의 멋졌던 34년 공직생활이 우리 가족에게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일동.”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새 정권이 들어섰다. 세종 성남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재판 결과를 유심히 보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업무에 소극적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 실장 3명에게 사직을 강요한 사안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1심에선 무죄, 2심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1심도 유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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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 2심 결과까지 보고난 뒤에 고발을 해서 법적 판단을 받아볼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제 와서 왜 또다시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김기춘 찾아가 “국정화 안 된다” 했더니

대전시교육감 임기를 마치고 두달 지난 2014년 8월, 김신호 전 차관은 아무 인연도 없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교육부 차관직을 제의하는 전화였다. 서남수 전 장관 후임으로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전 차관도 교육부에 들어갔다. 차관이 되자마자 김재춘 당시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애기를 들었다.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김재춘 비서관, 황우여 부총리, 김 차관 네 사람이 격주로 저녁을 먹으며 현안을 논의했다. “주로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자리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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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차관은 국정화에 반대했다. “하루를 하든 1년을 하든 이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내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그는 청와대에 번번이 “준비가 덜 됐다”는 핑계를 댔다. 청와대의 재촉을 받은 담당팀이 국정화 추진 계획안을 올리면 “당신들은 나서지 마라, 나는 정무직이니 내일 나가도 상관 없다”며 만류했다. 그는 “교육부 안에서도 국정화에 찬성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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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닦달을 해오자 그는 김기춘 비서실장 집무실을 찾아갔다. “제가 오늘 마음에 있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 이거 꼭 하셔야겠습니까.” 김 비서실장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벌게져 화를 냈고, 더이상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퍼부었다. ‘대통령의 의지이고 이미 정해진 것이며 교과서가 엉망’이라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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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차관은 말 없이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하지만 그 해 12월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직접 보고서로 정리해 김재춘 비서관에게 ‘대통령께 꼭 전해달라’며 건넸다. “내가 죽더라도 대통령이 이걸 읽어보게는 하고 싶었다.” 진상조사위 백서에 따르면 2014년 12월 교육부 실무진은 결국 국정화 세부 추진안을 완성했고 김 전 차관은 취임 163일만인 2015년 2월 5일 물러났다.

■ “내가 피해 다른 동료가 곤욕…괴롭다”

2015년 11월 국정화를 본격 추진할 ‘역사교과서정상화 추진단’이 출범했다. 전우홍 전 교육부 학생복지국장은 황우여 부총리로부터 추진단의 실무를 책임지는 부단장을 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했지만 계속해서 이영 당시 차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다. 병원 진단서까지 제출하면서 버텼다.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나온 전 전 국장은 “국정화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고, 역사를 공부한 내가 그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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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만에 교육부 ‘본부’ 밖으로 밀려나갔고, 제주도교육청 부교육감을 거쳐 지금은 경상북도 부교육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당시 일에 대해 말을 아꼈다. 끝까지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 수사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었을 터다. “내가 그 자리를 피해 다른 동료가 수사를 받게 됐으니, 자랑스럽게 얘기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국정화에 반대한다’며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은 자신은 “비겁자”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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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국장은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정치인과 장관들은 다 빠져 나가고 밑에서 일한 이들이 책임을 지게 됐다.” 김 전 차관과 박 전 실장 역시 같은 맥락의 말을 남겼다. “출세욕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을 밀어붙인 실장 이상 고위급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부화뇌동했던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현재 처지를 사무관, 주무관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책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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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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