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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회색 혼령 같은 개들이 짖으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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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폐쇄 위기’ 대구 한나네보호소

열악한 사설 보호소 개들은 늘어났고

구청은 분뇨 문제로 사용중지 명령

22만명이 국민청원 “폐쇄 안 된다”

“누가 또 개를 버리고 갈까 겁나요”

소장은 벌레를 잡아 뭉개며 말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걸까



한겨레

지난 8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 있는 한나네보호소에서 신상희 소장이 청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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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을까.’

아무리 고생스럽게 살아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는 속담을 현실로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대구 최대 사설 동물보호소로 알려진 대구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한나네보호소. 팔공산 자락,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외길만 있는 한적한 산 중턱에 들쑥날쑥한 가건물과 철망 사이로 개들이 짖고 있었다. 한여름 날씨 같았던 지난 8일 오후, 뙤약볕은 개 250여마리가 사는 사설 동물보호소를 자비 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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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강제철거?…잘못 알려졌다


기자가 ‘위험’ 표지판이 붙은 문 앞으로 다가가자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있던 개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개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입구부터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까지 수백 마리 개가 가득 차있었다. 수북한 털로 눈을 덮은 털이 긴 개들은 마치 회색 혼령처럼 보였다. 한쪽 눈이 충혈되다 못해 검은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아이, 끝없이 구덩이를 파는 아이… 악취가 코를 찔렀고, 잿빛이 된 담요와 방석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쓰레기통엔 똥이 가득했다. 여기가 개지옥일까.

하지만 그 와중에 같이 뛰어노는 아이들, 사람을 보고 경계 없이 배를 보이며 꼬리를 치는 아이, 어미 품을 파고드는 강아지들이 있었다. 율무야, 깜식아, 춘향아 이름을 부르면 제 이름을 알아듣고 꼬리 치며 달려왔다. 집을 잃고 이름을 잃었던 아이들이 한순간이라도 눈 마주치며 이름이 불릴 때 행복감을 느꼈다면 이곳을 마냥 지옥 같다고 부를 수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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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분뇨법 위반으로 대구 동구청에게 사용중지 명령을 받은 대구 도학동 한나네보호소 전경. 알려진 바와 달리 구청은 강제철거를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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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도와주세요.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200마리가 넘어요. 보호소가 폐지되면 이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요.”

지난달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한나네보호소를 도와 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알려진 대로 한나네보호소는 개정된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과 관련해 대구 동구청으로부터 사용중지 명령을 받은 상태다. 이곳을 찾는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나네보호소가 폐쇄될 수도 있다고 알려졌고, 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에 동의한 시민이 22만명을 넘어섰다. 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으면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보호소의 열악한 상황이 이슈가 되면서, 행정처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수백 마리 개들이 시보호소로 옮겨져 안락사를 당하는 수순을 밟는다고 알려졌지만, <애니멀피플>(애피)이 확인한 결과 사실관계가 일부 왜곡돼 있었다. 오는 24일을 기한으로 사용중지 명령이 내려져 있긴 하지만, 폐지가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가축분뇨법 제8조에 따르면 “시장, 군수, 구청장은 가축사육제한구역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자에게 축사의 이전, 그 밖에 위해 제거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더불어 “이전을 명할 때는 1년 이상의 유예 기간을 주어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이전에 따른 재정적 지원, 부지 알선 등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사정이 겹쳐 있는 한나네보호소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고름처럼 떠안고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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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분뇨법, 불법건축물, 주민들의 성화…


“기소유예가 됐어예. 그나마 다행이지요. 구청에서는 여기 규모를 18평 정도로 줄이라고 하는데, 그기 쉽나. 다 믹스견이고, 나이 많은 애들도 있고 입양이 잘 안되는데. 차라리 외국으로 보내면 모를까. 외국 사람들은 믹스견 그런 거 안 따지더라고요.” 신상희 한나네보호소장(53)이 보호소 곳곳에 놓인 물그릇을 씻고, 바닥에 떨어진 개똥을 빗자루로 쓸어담으며 말했다.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돌아서면 다시 허리를 숙여야 했다. 일이 끝이 없었다. 물그릇 씻고 250마리 마실 물을 채워 넣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보호소는 신상희 소장의 말대로 구청으로부터 가축분뇨법에 따른 가축 사육 제한 구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동물을 키우는 이유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가축분뇨법 개정안은 무허가축사 해결을 골자로 한다. 이에 법의 범주에 들지 못한 농가는 가축분뇨법상 배출시설 허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이행계획서 제출해야 하는데 한나네보호소처럼 많은 개체 수의 동물이 밀집한 동물보호소도 이에 해당한다. 가축분뇨법에 따르면 개도 젖소, 오리, 양, 사슴, 메추리와 함께 가축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구 동구청 환경창조과 관계자는 14일 <애피>와의 통화에서 “현재 고발 내용이 기소유예된 상태지만, 미신고 가축 분뇨 배출 시설 건으로 고발 및 행정처분이 동시에 나갔고, 행정처분 내용이 사용중지였다. 18일까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용중지 불이행에 따른 2차 고발을 당할 수 있다. 주변 농가에서도 민원이 지속해서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축 사육 제한 구역에서 개를 사육할 수 있는 범위는 60㎡ 이내다. 그런데 현재 한나네보호소는 약 1500㎡의 땅을 쓰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모를 줄일지에 대한 방안을 (보호소가 제출하길)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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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 있는 한나네보호소에서 신상희 소장이 개들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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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건축물 문제도 엮여 있다. 한나네보호소는 3개 이상의 컨테이너와 크고 작은 개 철장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인 채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구청 건축주택과 담당자에 따르면 “2014년부터 관련 민원이 제기돼 왔고, 그때부터 불법건축물 이행강제금 부과 공문이 발송된 상태”라고 한다. 보호소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이행강제금도 액수가 커졌고, 현재 밀려있는 이행강제금은 4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구청에서 보호소를 강제로 철거할 권한은 없다. “재산이 없기 때문에 압류할 수가 없고, 개인 소유권 때문에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 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사설 동물보호소 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광주광역시 주주동물병원 명보영 수의사는 “사설 동물보호소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지만 현재 약 150개의 보호소가 운영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네보호소 같은 성격의 (대규모) 사설보호소들이 전국에 몇 곳 더 있다. 관리 상태는 최하급이지만 애들이 시보호소에 가면 죽게 되니까 보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입양을 활발하게 보낼 형편도 되지 않는다”며 가축분뇨법 개정으로 더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있는 대형 사설보호소 문제를 들었다. 명수의사는 “개농장, 동물번식업자, 사설보호소 등이 각각 다른 목적으로 운영되지만 가축분뇨법은 똑같이 적용받는다. 그러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사정도 안다. 개농장도 살길을 마련해주겠다고 하는데, 지자체에서 보호소를 무작정 폐쇄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일부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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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의 개들은 인기가 없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밥 주고, 물주고. 나는 꼼짝도 못 해요. 100마리만 돼도 나 혼자 깨끗하게 관리하며 살 수 있겠어요.” 이상희 소장이 말했다. 하지만 100마리로 줄이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동네에서 미치갱이 소리 들어가며 이걸 17년째 하는데, 그래도 말 못하는 짐승을 못 버리겠는데 어쩌겠어예?” 그에 따르면 보호소에서 입양 가는 개체 수는 한 달 평균 2~3마리, 그런데 임신한 유기견이 구조돼 들어오거나, 누군가 보호소 앞에 개를 버리고 가면 금세 입양 간 개들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넘친다. 보호소가 알려지면서 집에서 키우던 개를 몰래 버리고 가는 사람은 일상다반사고, 5년 전에는 개장수에게 개를 사서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65마리의 개를 보호소 앞에 두고 간 사람도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비단 한나네보호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기동물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사회적으로 유기동물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양산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성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지, 동물을 버리는 행위가 범죄인데도 이에 대한 불감증이 있는 현상 등 유기동물 증가를 막기 위한 로드맵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편 ”공적인 단계에서 처리해야 할 유기동물 문제가 사설, 개인에게로 떠넘겨져 있다”고 현 상황을 짚기도 했다. 그는 “보호소에서 사육포기자를 받아주는 문화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처음 기를 때부터 성숙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희 소장 또한 보호소가 처한 문제의 근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요? 누가 여길 도와주고 말고가 아니라 유기견이 없어야지요. 그런데 이렇게 보호소가 유명해지고 알려지면요, 또 누가 개를 버리고 갈까 봐 겁나요.” 개 몸에 엉겨 붙은 벌레와 거머리를 한없이 잡아 뭉개면서 그가 말했다.

글·사진 대구/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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