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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노동의 新새벽]①“8시간만 일하게” 과로 사회 끝낼 ‘노동의 신새벽’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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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 도입‘

저녁이 있는 삶’으로의 전환점

경제 새 돌파구 과제도 만만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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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에 다니는 ㄱ씨(48)는 17일 출근했다. 일요일이지만 늘 있는 일이다. 법정 공휴일인 6·13 지방선거일에도 투표를 마친 뒤 곧장 회사로 향했고, 지난 금요일에는 철야 근무 당번이어서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일했다. 야근과 휴일 근무가 수십년째 이어진 터라 도대체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 계산해보지도 않았다. 낼모레 팔순인 ㄱ씨의 아버지도 그렇게 일을 했다. ㄱ씨가 아버지를 늘 바쁘고 일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ㄱ씨의 딸도 훗날 ㄱ씨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부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ㄴ씨(63)의 일상도 비슷하다. 아르바이트생이 있지만 지난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2~13시간씩 가게를 지켰다. 배달 노동자 ㄷ씨(51)는 서울 종로에서 지난주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음식 배달 일을 한 뒤 새벽에는 신문을 돌렸다.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한다. 덕분에 사회는 ‘한강의 기적’을 연출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로 진입하게 됐지만 개인의 삶은 황폐해졌다. 일과 삶의 균형은커녕 자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다. 시인 박노해가 1970~1980년대 노동자들 삶을 묘사한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 일상이 2018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다음달 중요한 변곡점을 맞는다.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원칙적으로는 40시간 노동을 해야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 최대 12시간 더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어기면 사용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2004년부터 주 40시간이었다. 그러나 연장근로(12시간)와 휴일근로(8+8시간)를 더해 총 68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했다. 생산성 하락을 우려하는 재계의 요구에 40시간 노동제를 68시간제로 편법 운용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763시간이다.

그러나 오래 일하는 것이 기업의 생산성을 담보해주던 시대는 끝났다. 창의성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장시간 근로로 지탱되던 시스템은 수명이 다했다. 52시간 근무제는 경제에서 새 돌파구를 찾자는 의미도 있다. 노동시간 감축이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면 사회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되고, 경제에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수십년 묵은 사회의 과로 문화가 단기간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연장·초과근로 수당에 의존해온 가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일해온 분들의 희생에 기초해서 운영돼 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과 여가, 기울어진 운동장

“8시간만 일하게” 40년간 모양새만 바뀐 노동자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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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의 노동자들은 에너지 드링크와 함께 풀리지 않는 피로에 시달리고, 일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했다. 만원 지하철에 실려 회사에 출근하고, 그마저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행운으로 생각하며 오랜 시간 살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이 같은 생활이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강력한 정부 규제가 도입된 것이다. 흔히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로 표현된다.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는 곧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야근은 축복”이라는 사용자의 생각과 “우리를 8시간만 일하도록 해달라”는 노동자의 호소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양새만 바꿔 가며 계속 맞부딪쳤다.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은 대한민국의 ‘장시간 노동체제’는 가정을 돌볼 틈 없이 직장에만 헌신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여성들은 집안일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도 여전히 ‘주부’라고 불리고 스스로를 그렇게 일컬었다. 산업화 시대 노동은 국가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떠받들어졌다. 그 시대가 저물자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닥쳐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 두자’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국민소득이 오르면서 여가생활은 점차 풍부해졌지만 노동시간은 쉬이 줄지 않았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이 당시는 국민소득이 워낙 낮은 시기이다보니 장시간이라도 일을 해서 일단 많이 벌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전태일 “아이들 16시간씩 혹사” 분신…해태제과 여공들 1일 8시간 쟁취

■ 하루 16시간 혹사당한 여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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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14일 서울 중구 을지로6가 평화시장 앞길에서 23세 청년 재단사 전태일이 분신했다. 품에는 <근로기준법 해설>을 안고 몸에 불을 붙이며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기업주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 열다섯, 열여섯 살의 어린아이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혹사당하고 있으니 당국은 이런 사태를 시정해달라.” 법은 존재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1953년 미군정이 일찍이 도입한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 8시간, 주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고 이미 명시했지만 현장에서는 무시해도 그만이었다.

외화를 벌어 오는 노동은 그야말로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산업으로 국가에 기여한다는 ‘산업보국’이 유행이었다. 중동 건설현장에 돈 벌러 나간 노동자들은 뙤약볕에서 월 280시간씩 일했다.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만 쉬었다. 부모와 형제를 부양하며 가장 노릇을 하던 여성도 적지 않았다. 남성의 외벌이가 표준값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여성은 밖에서 노동을 하더라도 ‘주부’로 불렸다. 1976년 경향신문 기사(사진)를 보면 여성저축생활중앙회는 저축을 많이 한 여성을 뽑아 ‘알뜰주부상’을 줬다. 그해 ‘금상’을 받은 윤문숙씨(당시 33세)는 교도소에서 8년 야간근무를 했는데, 틈틈이 뜨개질과 재단 부업도 해서 가정을 일구고 저축을 했다. 윤씨는 수상 소감에서 “며느리, 주부, 사회인의 1인3역은 여간 고되지 않았다”면서도 “앞으로 고등학교 3학년인 막내 시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교도소 근무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1979년 해태제과 여공들이 역사적인 투쟁을 벌였다. 매일 12시간씩 일을 하는데 너무 힘이 드니 8시간으로 좀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오전 8시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8시간을 일하고 오후 4시에 퇴근을 감행했다. 사측은 폭력으로 대응했고 80여명의 퇴사자가 나왔다.

“지난 2월까지는 주야교대로 12시간을 일해 왔으며 일요일에는 낮 12시에 들어가서 밤을 새우고 그 이튿날 아침 7시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19시간을 일한 셈입니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오는 날에는 너무 지쳐서 밥도 먹지 못하고 피곤해서 그대로 쓰러지고 맙니다.” 한 노동자는 호소문에 이렇게 썼다. 결국 사회단체들과 종교계가 힘을 보탰고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됐다. 이는 이후 식품업계에 8시간 노동제가 실시되는 계기가 됐다.


민주화 열기 노동운동으로 확산…90년대 초 3저 호황 속 일부 여가 즐겨

■ 87년 민주화의 성과, 44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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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던 1980년대에 노동자들은 잔업수당만 받는다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기도 했다. 각성제 ‘타이밍’을 복용하고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들 이야기도 여러 차례 언론에 나왔다. 1987년 민주화운동 열기는 노동운동으로 이어졌다. 그해 7~8월 울산에서부터 ‘노동자대투쟁’이 퍼져나갔다.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해달라!” “출퇴근 시 사복 착용하게 해달라!” “안전화 신고 조인트 까지 마라!” 각성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 결과 198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됐고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44시간’으로 명시됐다. 경제는 성장 중이었고 노동시간은 점차 줄었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부터 법정 공휴일을 17일에서 19일로 늘렸다. 하루만 쉬던 음력설도 이때 3일 연휴로 늘었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물결이 닥쳐오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저금리·저달러·저유가의 3저 호황 속에 국민소득이 5000달러를 넘어섰다.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은 여가를 즐기는 시대가 왔다. 격주로 토요휴무제를 실시하는 기업들도 나왔다. 자가용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휴가철이면 꽉 막힌 도로와 텅 빈 도심이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1995년 8월 경향신문(사진)은 ‘신세대 직장인 휴가문화 바뀐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대기업 사원들을 중심으로 성수기를 벗어나 봄·가을 등에 휴가를 떠나는 ‘사시사철파’,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더라도 외국으로 떠나고 보는 ‘해외여행파’ 등을 소개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힘든 야간노동이나 잔업을 반기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경기가 좋던 시절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야간노동은 ‘활기’로 묘사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잔업·특근으로 돈 벌기 급급 ‘장시간 근무’ 떠받들어

■ 퇴출 공포, 정글이 된 노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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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대가 들이닥쳤다. 전문가들은 이때 형성된 ‘생애주기에서 짧은 노동 기간’이 한국의 노동자를 자꾸만 더 일하도록 내몬다고 지적했다.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 두자”는 정신에 노동자들이 지배받게 된 것이다. 정리해고법이 1998년 2월 시행되면서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하는 문이 열렸다. 고개를 숙이는가 싶던 잔업과 휴일근무에 대한 선호도는 이때 다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퇴출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비정규직이 늘고 자영업도 상황이 나빠지면서 다 함께 장시간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그 시절,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기보다는 잔업과 특근을 보장해서 조합원들이 돈을 벌게 하는 데 급급했다. 기본급은 적고 수당은 큰 임금체계로 유지되는 ‘장시간 노동체제’를 노조 스스로 떠받들었다는 비판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 근로기준법은 진작부터 주당 노동시간을 규정했지만, 야간과 휴일노동은 제한이 없어서 할증수당만 주면 시간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었다. 사측과 노조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정부가 방관하는 가운데 긴 노동시간은 계속 유지됐다. 1998년 7월 경향신문 기사(사진)를 보면 직장인들은 불황이 닥치자 상여금을 반납하고 휴가비를 받지 못하면서 여름휴가를 포기해야 했다.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직원들을 반강제로 휴가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서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기업들은 앞다퉈 ‘연봉제’를 도입했다. “24시간이 짧아요.” 1999년 1월 동아일보를 보면 연봉제 직장인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쪼개 영어를 공부하고 동료들은 경계한다.


2004년 ‘주 5일’ 시작…경영계 “야근할수록 생산성 저하” 야근의 역설

■ 시대적 과제가 된 ‘저녁이 있는 삶’

법정 노동시간이 주당 ‘40시간’으로 규정된 것은 2003년부터다. ‘주 5일제’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 외환위기 때 대량 실직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자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며 노동시간 단축 논의 물꼬를 텄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지나고 경기가 좋아지자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노동자 ‘삶의 질 향상’으로 명분이 바뀌었다.

2012년 하나의 문구가 대한민국을 휩쓴다.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선 경선 후보로 나오면서 내건 슬로건이었다. 밤낮없이 일하던 장시간 노동체제에서 여가는 모두에게 절실했다. 같은 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들 앞에서 “젊었을 적 일을 안 하면 나쁜 습관이 든다. 야근은 축복”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경영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논의될 때마다 “아직은 일할 때” “즐기기엔 이르다”고 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경영계도 장시간 노동문화의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6년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서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심각한 기업문화로 꼽았다. 직장인들은 주중 2~3일을 야근하고 있고, 3일 이상 야근자도 43.1%나 됐다. 대한상의는 야근을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야근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굴뚝산업 시대의 노동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이라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효율화와 생산력 향상, 평등, 삶의 질, 모든 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된다. 정부는 이제 ‘무제한 연장노동’을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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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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