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각종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계 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13일(현지 시각) 올해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인상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취약계층 대출자에게 비상이 걸렸다. 금리 인상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데, 최근 고용 부진과 내수 침체 등의 여파로 우리나라에 경기 불황이 닥칠 경우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택 대출은 줄었지만 신용 대출은 늘어
올해 1~5월 새로 생긴 가계 대출은 27조400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5조1000억원이 줄었다. 2금융권의 신규 가계 대출이 7조4000억원으로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 관계자는 "신협·농협 등 상호금융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작년보다 크게 줄어든 영향"이라고 말했다. 은행·보험 등 1금융권에서도 새 주택담보대출이 작년 12조6000억원에서 올해 11조3000억원으로 10%쯤 줄었다.
그래픽=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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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용 대출 상황은 정반대다. 올해 1~5월 새로 늘어난 신용 대출 규모는 총 4조6000억원으로 작년(2조2000억원)의 2배가 넘는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 5월 말 기준 전체 개인 신용 대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작년 하반기 출범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이 중·저금리 신용 대출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이자가 싼 대출 창구가 새로 생긴 것이다. 두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나온 신용 대출은 올해 1~5월 1조8000억원에 이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각종 규제로 주택 대출이 어려워졌지만 전반적으로 금리가 여전히 낮은 탓에 신용 대출 등 다른 쪽에서 대출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이익을 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대출 영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기엔 취약 계층부터 충격"
신용 대출뿐만 아니라 올 들어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나쁜 신호다. 자영업자 대출은 가계 대출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가계 대출을 받기 어렵게 된 자영업자들이 개인사업자 명의로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 관련성이 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은 300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올해 1~5월 새로 늘어난 개인사업자 대출은 11조3000억원으로, 2008년 이후 같은 기간을 비교해보면 가장 많이 늘었다. 특히 제2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협·농협 등 상호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4월 말 기준 49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1%(4조9000억원)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신용 대출이나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체 부채의 양(量)은 줄어도 부채의 질(質)이 나빠지는 결과가 나타날까 우려한다. 신용 대출이나 자영업자 대출 모두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기가 본격화하면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을 계기로 시중은행 신규 신용 대출 평균 금리도 작년 10월 4.15%에서 지난 4월 말 4.49%까지 상승했다.
고용 지표가 악화하고 저소득층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른다는 것도 문제다. 임진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최근 신용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취약 계층이 생활비 대출 등을 많이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금리 상승기에는 일자리가 없거나 소득이 적은 취약 계층부터 금리가 더 많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말 가계부채 관리 점검회의에서 "신용 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 등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해 선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DSR(Debt Service Ratio·총체적 상환 능력 비율)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연간 소득 대비 모든 대출금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한다. 금융회사가 개인의 대출 금액을 정할 때 원리금 상환 능력을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DSR 규제가 도입됐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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