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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다섯살 꼬마를 죽인 '괴물'은 일본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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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버지가 폭행 등 학대, 이웃들이 여러차례 신고했지만 부모가 '상관말라'고 하자

경찰도 상담센터도 그냥 돌아가… 국민들 "마음에 가시가 꽂혔다"

"몇 번이나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왜 구하지 못했는가."

한 아이의 천진한 사진과 참혹한 사연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다.

다섯 살 후나토 유아(船戶結愛)는 눈이 동그랗고 양 볼이 통통한 단발머리 꼬마였다. 지난 3월 2일 유아는 119 차량에 실려 병원에 왔다. 아이 엄마 후나토 유리(船戶優里·25)씨가 "아이가 숨을 안 쉰다"고 말해, 양아버지 후나토 유다이(船戶雄大·33)씨가 119를 눌렀다. 유아를 검진한 의사는 "이미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유아의 온몸이 멍투성이"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한 달 앞둔 때였다.

경찰은 처음엔 양아버지만 상해죄로 기소했다. "아이에게 '곧 초등학교 입학하니까 미리 공부하라'고 했는데 아이가 '예' 해놓고 낮잠 자길래 욱했다"고 했다. 조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8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경시청 간부가 아이 공책에 적힌 글을 읽다가 목이 메었다.

"오늘보다 내일은 잘할 테니까 부탁해요. 용서하고 용서해주세요. 부탁해요. 같은 짓 안할게요. 용서해주세요."

아이는 난방을 끈 독방에서 매일 새벽 4시 알람 시계에 맞춰 일어나 혼자서 이런 글을 몇 장씩 썼다. 양아버지가 시켜서였다. 그 시간 양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옆방에서 두 살짜리 남동생을 안고 잤다. 아이 방에 전등을 안 달아줘서 빛도 없었다.

아이는 2월 중순 양아버지가 공부 안 하고 낮잠 잔다고 마구 때린 뒤,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아이가 맞은 몸에 폐렴이 겹쳐 몸져누웠는데도, 학대했다는 걸 들킬까봐 병원에 안 데려간 탓이었다. 아이는 하루 한 끼만 먹은 날이 많아 사망 당시 체중(12㎏)이 한 살배기와 엇비슷했다. 부모는 경찰에 "외식은 나머지 세 식구끼리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달 6일 부모를 둘다 어린이 유기·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아이를 죽인 부부가 괴물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유아의 가정은 딸 키우는 싱글맘과 냉동식품회사 회사원이 결혼해 아들 하나 더 낳고 사는 가정이었다. 양아버지 회사 동료는 "사교적이고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진실은 달랐다. 죽은 유아양이 세 살이던 2016년 겨울, 이웃 주민이 잠옷바람에 맨발로 아파트 앞에서 우는 유아양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듬해엔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다 못한 이웃이 아이 울음소리와 "너 때문에 나도 아빠한테 야단맞잖아"라고 혼내는 아이 엄마 목소리를 녹음해 경찰에 알렸다. 그때마다 어린이상담센터 직원과 경찰이 달려왔지만 아이를 일시적으로 데려다 며칠간 보호한 게 다였다. 부모가 "다시는 안 때리겠다"고 약속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시설에 보내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잠깐 나왔지만, 부모가 거절해 흐지부지됐다. 아이가 죽기 한 달 전, 도쿄 시나가와 어린이 상담센터 직원이 가정방문을 했지만 아이 엄마가 "관여하지 말라"고 해 그냥 돌아왔다. 유아를 죽인 괴물은 일본 사회였다.

마이니치신문은 "아이 부모를 욕하는 것만으로는 떨쳐버릴 수 없는 '마음의 가시'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일본 SNS에도 "우리 어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지켜주지 못해 괴롭다"는 글이 수없이 떠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해도 부모가 "상관 말라"고 하면 그만이고, '사건'이 되지 않는 한 사회가 끼어들지 않는 구조를 자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는 걸 금기로 아는 풍토, 부모가 거부하면 사회가 강제로 개입하기 쉽지 않은 법적 구조가 엽기적인 비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15일 관계 각료를 모아 회의를 열고 "한 달 안에 대책을 내놓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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