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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은 가정폭력의 냉혹… 공포에 숨이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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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봉 佛 영화 '아직 끝나지…' 공포 영화보다 두렵고 충격적

불안·공포에 떠는 아이 눈빛 통해 우리 사회 부실한 법과 제도 고발

따귀를 맞은 듯 얼얼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영화가 끝나고도 쉽게 일어설 수가 없다. 21일 개봉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감독 자비에 르그랑)는 어떤 공포 영화보다 두렵고 충격적인 드라마다. 애써 모른 척했던 가정 폭력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기에 그렇다. 특히 롱테이크신이 이어지는 마지막 20여 분은 보는 이를 숨 쉬기 힘들 만큼 몰아붙인다. 비명을 지를까 입을 틀어막게 되고, 객석은 침묵으로 얼어붙는다.

폭력이란 결코 이해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는 점에선 구스 반 산트 감독 영화 '엘리펀트'를, 가정 폭력을 침착하고 냉혹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선 남편 손찌검에 시달리다 탈출한 미국 여성 폴레트 켈리가 쓴 시(詩)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떠올리게 한다. 참을 수 없이 잔혹해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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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소년 줄리앙은 따로 사는 아빠와 만나는 날이면 말이 없어진다. 아이는 눈빛으로 줄곧 신호를 보낼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2017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사자상(감독상)과 미래사자상(신인감독상)을 받았다. /K.G.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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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은 법원이다. 판사가 부부를 앞에 두고 양육권 조정 심리를 한다. 아내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남편 앙투안(드니 메노셰) 의견이 팽팽하다. 아내는 "남편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안전하게 살고 싶다"고 하고, 남편은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데 아내가 못 보게 막아서 답답하다"며 눈시울 붉힌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서면으로만 전해진다. 판사가 소리 내서 읽은 열한 살 소년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편지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 사람과 마주칠까 걱정된다"고만 쓰여 있다. 그 사람이 아빠다.

영화는 양쪽 모두의 진실을 보여준다. 남편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내를 그리워한다. 아내에겐 새 애인이 생겼고 전남편을 피해 도망 다닌다. 관객은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혼란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보편적인 상식에 얽매인 편견 덩어리들이다. 흔히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고, '비바람은 집 안에 들어가도 법은 집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렇게 성급히 판단할 무렵, 감독은 비로소 아이 줄리앙과 조세핀(마틸드 오느뵈)의 눈빛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영화가 감추고 있던 송곳도 이 순간부터 드러난다.

법과 사회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실재하는 모든 위협을 다 감지하진 못한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끊임없이 '도와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어른들은 이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감독은 아이들 대사를 최소화하고 그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이들이 처한 현실의 벽을 고발한다. 아이들 목소리는 대신 다른 소음으로 대치된다. 자동차 경고음, 시계 초침 소리, 전화기 벨소리와 구두 뒷굽 소리…. 음악을 배제한 건조한 사운드는 관객을 줄곧 긴장시킨다. 아이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내몰려서야 비로소 주목받는다. 세상은 그만큼 폭력에 무디다.

자비에 르그랑은 2012년 '모든 것을 잃기 전에'라는 30분짜리 단편영화를 내놓아 주목받은 프랑스 감독이다. 이 단편영화 주인공 역시 같은 미리암이고 같은 배우다. 미리암은 이 영화에서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집을 탈출하려 한다. 그가 겨우 탈출에 성공하고 나서 겪는 수난사가 이 93분짜리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다. 이 영화의 제목은 결국 그런 의미일 것이다. 미리암도 줄리앙도 살아 있지만,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낭떠러지다. 15세 관람가.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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