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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우선]소개팅때 약속한 ‘행복’ ‘혁신’… 19세때 배신의 교육 안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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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14 대 3.’

13일 치러진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가 진보 진영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 진영은 참패의 원인을 ‘깜깜이 선거 속 진보 정치세력의 결집’, ‘현직 프리미엄’ 등에서 찾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진보 교육 전성시대’가 설명되진 않는다. 오히려 보수 패배의 핵심은 진보와의 ‘가치 싸움’에서 밀린 데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은 공통적으로 ‘행복’과 ‘혁신’의 가치를 내세웠다. 이 땅의 만 19세 이상 성인들은 누구나 미래의 아이들이 달라진 학교 안에서 행복한 교육을 받길 원한다. 본인들이 극한의 경쟁 속에서 공부를 잘해야만 대접받는 한국의 교육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행복과 혁신 외에도 진보 교육감들은 ‘인성’, ‘민주시민’, ‘창의예술’, ‘평등’, ‘교육복지’, ‘평화’, ‘무상교육’까지 거의 인류 보편적 가치에 가까운 온갖 좋은 단어를 내세웠다. 그때 보수는 무엇을 말했나. ‘전교조 NO’, ‘자사고·정시 확대 YES’ 같은 지엽적이고 심지어 ‘그들만의 리그’를 지키려는 듯한 구호를 외쳤다. 안 그래도 국민들의 머릿속에 지난 보수 정권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득한 상황에서 보수는 좀 더 새로웠어야 했다.

선거란 소개팅 같다. 아무리 스펙(공약)이 좋은 상대가 나와도 ‘느낌’이 별로면 마음이 가지 않기 마련이다. ‘하루에 딱 한 번만 손에 물 묻게 할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현실적이고 신실한 결혼 상대일 수 있지만 매력적이진 않다. 그보다는 밑도 끝도 현실성도 없지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말하는 상대가 더 끌리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진보가 내세운 가치는 보수보다 매력적이었다.

자, 이제 문제는 결혼 이후다. 앞서 경험했듯, 상당수의 진보 교육감들에게 결혼(당선) 전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교육 가치를 구현할 구체적 정책 능력은 물음표다. 이들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인 ‘학교에서 덜 가르치고(학업량 축소), 덜 평가하는(각종 고사 폐지)’ 정책을 택하고 있다. 적당히 가르치고, 숙제도 없고, 시험도 안 보니 당장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적다.

그러나 학교가 ‘가르치는 척’만 하다 보니 아이들은 제대로 배우려면 점점 더 학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수학 같은 공부 교과뿐 아니라 생존수영 같은 예체능까지도 그렇다. 오죽하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교 수영만 해서는 한 학기가 끝나도 물에 뜨지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까. 진보 교육 체제에서 갈수록 사교육비가 사상 최대치를 찍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연이 아니다.

학교가 교육에 손을 놓을수록 사교육의 세는 커진다. 경제력에 따른 학력차 또한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고소득 가구의 월평균 자녀 교육비가 빈곤층의 27배에 달한다는 통계청 조사도 나왔다. 이 아이들은 학력의 시작은 같았을지 몰라도 끝은 다를 것이다. 가게 되는 대학, 갖게 되는 직업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진정한 행복 교육이란 ‘18세까지만 행복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일생이 행복한 교육’이 돼야만 한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가르칠 건 가르치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부족한 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확인된 부족함은 줄 세우는 데 쓸 게 아니라 교사와 학교가 책임지고 채워줘야 한다. 18세까지 ‘행복 교육’인 줄 알았던 게 19세에 ‘배신의 교육’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행복’과 ‘혁신’을 약속한 진보 교육감이 풀어야 할 숙제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