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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송충현]불닭볶음면을 아는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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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산업2부 기자

6·13지방선거가 있기 며칠 전. 간만에 미세먼지 없이 파란 하늘이 반가워 네 살배기 아이와 서울시청 앞 광장에 갔다. 잔디밭에서 볕을 쬐고 있는데 마침 광장에서 유세 중이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인사를 청했다. 조 후보는 명함을 건네며 인사한 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저씨 누군지 모르지?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야.” 선거를 앞둔 후보자가, 그것도 서울시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후보가 정책 수혜자가 될 꼬마에게 건넨 말이 너무 썰렁했다.

유세를 보좌하던 한 여성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다”고 속삭이자 조 후보는 “그런 말 하면 안 된대. 꼬마야, 아저씨 안 무서워”라며 손을 흔들곤 다른 시민에게 이동했다.

13일 치러진 선거에서 조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했다. 겉으론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중을 일반학교로 전환하고 학원 일요일 휴무제를 추진하겠다는 그의 공약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교육감선거는 남북관계 등 굵직한 이슈에 묻힌 ‘깜깜이 선거’였다. 후보 간 주장이 뭐가 다른지를 알 틈이 별로 없었다.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가 모여 만들어진 조 교육감의 당선 자체를 깎아내릴 순 없으나 정책 대결보다는 “여당 압승 분위기에 묻어갔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조 교육감이 내건 정책에 반감을 표시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 동네 주민은 “외고와 자사고를 없앤다고 고교 서열화, 사교육이 사라지진 않는다. 조 교육감이 ‘외고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이념적 이슈에 집중하느라 정작 학생들이 겪어야 할 경쟁과 고통엔 무신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 고통과 관련해선 최근 유통업계에 유행하고 있는 불닭볶음면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0대가 가장 많이 소비한 상품은 물과 우유를 제외하면 불닭볶음면이 단연 선두다. 너무 매워 어른들에겐 불량식품처럼 보이는 이 면이 애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업계에선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뇌에 통증 자극을 주면 뇌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엔도르핀을 뿜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를 풀려는 10대의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 교육감이 내 아이에게 “나 무서운 사람이야”라는 말을 왜 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그는 어쩌면 스스로 본인의 정책과 가치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를 밀어붙일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교육은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는 전장이나 실험장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서운’ 교육감보단 매운 라면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심리를 이해하는 교육감이지 않을까.
송충현 산업2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