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주부 임지은(30)씨는 거실에 있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그는 얼마 전 이른 아침에 잠옷을 입은 채 창밖을 내다보다 깜짝 놀랐다. 남녀 외국인 관광객 두 명은 임씨 집 맞은편의 계단에 올라 서 있었다. 창문을 통해 임씨의 집 거실 안이 들여다보이는 위치였다. 두 관광객은 임씨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임씨는 “이뿐이 아니다. 잠시라도 대문을 열어 놓으면 집 안에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서 관광객들이 한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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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의 한 한옥 대문에 '앞 계단에 올라서지 말아달라'는 영문이 적혀있다. 일부 관광객이 계단에 올라가 이 집 안의 거실 안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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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가회·삼청동)에는 하루 평균 1만 여 명(외국인 약 70%)의 관광객이 찾는다. 주거용 한옥 250여 채가 모인 ‘가회동 골목길’(북촌로 11길) 주민들은 ‘관광객 공포증’를 호소한다.
지난 12일 오후 북촌로 11길의 골목길(총 약 100m 길이)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간간이 관광객의 큰 웃음소리가 귀를 찌르기도 했다. 한옥 대문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도 관광객은 꾸준히 몰려왔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서 인증샷을 찍거나, 대문 앞에 앉아있는 관광객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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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의 한 대문 앞에 두 관광객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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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에는 주민들이 '과잉 관광'에 고통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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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의 집들 대문에는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4개국어가 적힌 종이들이 붙어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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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울시는 14일 ‘북촌 한옥마을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안’을 내놨다. 주거 한옥이 밀집한 북촌로 11길 100m 일대가 대상이다. 관광 시간과 인원을 제한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대책안에 따르면 ‘관광 허용시간’을 지정한다. 주중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만든다. 하지만 ‘허용’되지 않는 시간대의 관광을 강제로 막을 제도적 근거는 없다. 주민들로 구성된 일종의 ‘마을 지킴이’가 지정 시간을 벗어난 관광은 자제하도록 개도할 뿐이다.
주민들을 주요 출입구 3곳에 배치해 관광객 수도 제한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의무 사항은 아니다. 시는 이달 22일 북촌 한옥마을 주민이 참여한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다음 달부터 이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는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판을 든 안내원들이 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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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받아 관광객 줄여야” 주장도
“한옥마을이란 이유로 규제만 있고, 지원은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주민 김연주(57)씨는 “북촌지구단위계획에 묶여 한옥의 증축·신축·개보수 등의 절차가 너무 복잡해 집 고치기를 포기하는 주민들도 있다”면서 “한옥의 유지·보수에 서울시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 김미숙(62)씨는 “서울시는 주거지를 관광지로 홍보하면서 주민들의 고통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왔다”면서 “60년 넘게 살아온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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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자율적인 관광 시간 지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며"관광 사전 예약제를 통해 관광객이 오는 시간대를 분산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의 한 상점에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임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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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반기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관광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북촌 일대 상권이 다 죽는다. 일부의 문제가 부각되어서 그렇지 대다수의 관광객은 에티켓을 잘 지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떠드는 일행에게 “쉿 조용히”를 외치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인 관광객 스다 노리코(59)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이곳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왔는데,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박소영(30)씨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을 보니 관광하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치가 보인다”면서 “시와 주민이 잘 협의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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