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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돈·배경·능력 없는 ‘루저들’ 이야기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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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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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골프고 실화 바탕으로

존폐위기의 레슬링부 그려

제작비 2천만원에 직접 촬영

친삼촌·학부모·주민도 나와

실제라 착각할 만큼 ‘리얼’

“궁극적 목표는 웃기는 것”


감독 고봉수(42)의 영화에서 배우들이 하는 말의 80%는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대사가 아니라 배우 스스로 상황에 맞게 말하는 애드리브다. 배우의 대사는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다. 분노나 짜증 등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선 연기인지, 실제인지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리얼’하다. 극영화인가, 다큐멘터리 영화인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고 감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첫 장편 영화 <델타 보이즈>(2016)다. 돈 없고, 배경도 없고, 능력도 없는 청년 4명이 사중창 대회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은 암울하지만 그의 영화는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신작 <튼튼이의 모험>(106분, 15세 이상 관람가)도 전작과 궤를 같이한다. 돈 없고, 배경 없고, 능력도 없는 충길 등 대풍고등학교 레슬링부 청소년들의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다. 지난 11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고 감독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다큐 같은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연출의 궁극적 목표는 관객을 웃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델타 보이즈>의 주연 배우들, 이른바 ‘고봉수 사단’ 대다수가 등장한다. <델타 보이즈>에서 노점상 준세를 맡았던 배우 김충길이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함께 사는 충길로, 공장 아르바이트 청년 일록을 맡았던 배우 백승환이 필리핀 어머니를 둔 효자 진권으로, 생선가게 꽁지머리 청년 대용을 연기한 배우 신민재는 불량서클 출신 레슬링 천재 혁준으로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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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의 모험>은 존폐 기로에 처한 전남 함평골프고 레슬링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고 감독은 “김대우 감독님이 함평골프고 레슬링부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면 어떠냐고 말씀해주셔서 인터뷰를 하러 갔다. 인터뷰를 해보니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코치님들도 매우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였다. 굉장히 인상 깊었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도 코치가 등장한다. 배우 고성완이 맡았다. 사실 고성완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실제 직업은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고 감독의 친삼촌이다. 한 달 휴가를 내고 촬영에 임했다. 코치뿐 아니라 영화에는 실제 함평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진권 어머니 역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 함평골프고 선수의 어머니이고, 고물상 김씨 역시 고물상 섭외 중 만난 실제 고물상 주인이다. 비전문 배우까지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한 데는 고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한몫을 한다. 그는 “촬영에 들어갈 때 배우들에게 ‘이 정도 대사는 좀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한다.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목표한 대사가 나오면 바로 ‘오케이’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영화에서는 감독의 ‘커트’를 기다리는 배우들의 표정도 읽힌다.

<델타 보이즈>와 <튼튼이의 모험> 모두 고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촬영 스태프까지 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델타 보이즈>는 250만원, <튼튼이의 모험>은 2000만원의 제작비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B급 영화를 좋아한 그는 2004년 2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할 당시 <엘 마리아치>가 7000달러로 만든 영화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3개월 과정의 영화 학원에 다녔다. 촬영·편집 등 기본적인 영화 지식과 기술을 배웠다. 동생과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어 온라인에 올렸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한인 라디오 DJ 등을 하는 7년간 틈틈이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여러 작품 중 단편 <컵 오브 커피>로 시카고노스웨스턴 영화제 최우수 단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2012년 귀국 후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다시 단편 <G4>를 찍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지금 ‘고봉수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 백승환·김충길·신민재 등을 만나게 됐다. 배우들을 향한 고 감독의 애정은 깊었다. 그는 “이렇게 재능 있는 배우들을 보지 못했다. 저보다 이 배우들을 많이 기억하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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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수 사단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활용해 <다영씨>를 찍었다. 퀵서비스 기사 민재(신민재)가 삼진물산에서 일하는 다영을 짝사랑하는 내용의 흑백 무성영화다. 지난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차기작으로는 제작비 50억원 규모의 히어로물을 준비 중이다. 딱히 내세울 것은 없는, 일명 ‘루저’지만 특이한 괴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밴드 크라잉넛의 곡 제목에서 차용한 <튼튼이의 모험>의 영어 제목은 ‘Loser’s Adventure’(루저의 모험)다. 고 감독은 “주로 루저들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더라. 관심이 가고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두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도 관련이 있다. 청년들이나 청소년이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더라. 당연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렇겠지만, 나와 배우들도 꿈을 포기할 상황에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다. 루저들 얘기가 결국 저희들 얘기다. 힘들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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