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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고] 촛불시민과 6·15 선언 이행 / 황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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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황인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오늘로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8주년을 맞는다.

6·12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선언으로 한반도에는 평화의 새 지평이 크게 열렸다. 70년 넘게 적대하던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양국 간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기로 선언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 이은 동북아 냉전질서 해체의 중대한 진전이다. 그렇다면 18년 전의 6·15 공동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뒤돌아보면 지난 6월12일의 싱가포르 못지않게 2000년 6월13일에 세계 언론의 뜨거운 시선이 평양으로 집중됐다. 55년간 대결 상태에 있던 남북의 첫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세기적인 사건이었다. 2박3일 회담 끝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제 긴 반목과 대결의 과거를 떨쳐버리고, 서로 화해·협력함으로써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나아갈 것임을 7천만 겨레와 세계인들 앞에 천명하였다.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이다.

실로 예상 밖의 대전환에 겨레는 환호했고 세계는 경탄했다. 그리고 두 정상의 합의는 착실히 실천됐다. 고위급 회담을 비롯해 경제협력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실무회담 등 남북 당국 간의 노력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을 통한 민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류·협력으로 진전되어 갔다. 6·15 선언은 더 이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평화와 통일의 이정표가 되었고,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으로 계승되었다. 화해와 협력에 기초해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한반도를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앞세우며 남북 합의를 파기하고, 국제공조를 앞세워 남북관계 개선을 포기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아래서 우리가 겪은 것은 무엇이었나? 제재 위주의 대북정책 아래서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급속히 고도화되었고, 종국에는 모든 대화가 단절되고 북-미 간의 군사적 충돌 위험은 크게 증대되었다. 민족의 운명이 위태로워져도 남북이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모색하기보다 주변 강대국에 기대어 수동적 대응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의 운명을 바꾼 건 촛불시민의 위대한 항쟁이었다. 시민들의 변화 열망에 힘입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신 한반도 평화구상’은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정신과 원칙으로의 복귀를 뜻했다. 남북의 상호 공존과 화해·협력을 전제로 우선 평화를 정착시키고 번영을 추구하면, 통일은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해 점진적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 간다는 자주의 원칙을 갖고 기존의 합의를 철저히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1년 일관된 원칙과 진정성으로 북한과 국제사회에 호소한 결과, 문재인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선언들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이행되도록 하는 데 있다. 실천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오랜 분단이 우리 몸속에 심어온 불신과 회의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남남갈등이란 형태로 분열을 조장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6·15 공동선언에서처럼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협상하고 합의하여 실천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온 역사를 상기하고, 남북관계와 국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랜 분단체제의 질곡을 넘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가려는 촛불시민들의 참여와 국민 합의 기반 조성을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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